인간이 우주를 향해 말했다.
“우주여, 나는 존재합니다.”
우주는 대답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는 아무런 의무감도 느끼지 않는다.”
1899년, 스티븐 크레인의 시
〈부드러운 전쟁〉(『War Is Kind』 수록) 중에서
웨인다이어의 책에서 만난
스티븐 크레인의 이 짧은 대화는
읽을수록 묘하게 마음을 건드린다.
차갑고 무심한 말인데,
이상하게도 위로처럼 남는다.
우리는 살면서 종종
세상이 우리에게
내가 한 만큼은
돌려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열심히 살았으니,
성실했으니,
참고 버텼으니
이제는
행복해져도 되지 않느냐고.
그래서 마음 한켠에
이런 생각이
자주 자리 잡는다.
'얼마나 더 살아내야
행복해질까?'
'내 행복을 위해
그 어떤 것을
놓쳤을까?'
웨인 다이어는 『자유롭게』에서
이 기대를 아주 단호하게 내려놓는다.
이 세상은 우리에게
생동감 있는 삶이나
행복한 삶을 제공할 의무가 없다.
이 문장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아마도 우리는
행복을 너무 오래
의무처럼 품고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행복한 것이
기본값이라는 생각은
우리를 끊임없이
평가하게 만든다.
지금의 나는 기준에 맞는지,
이 감정은 정상인지,
이 상태는 합격인지 불합격인지.
그러다 보면
불행보다 더 힘든 순간이 찾아온다.
불행한데,
불행하면 안 된다고 느낄 때다.
웨인 다이어는 말한다.
이미 일어난 일들은 그저 끝난 것으로 받아들이라고.
거기서 배울 수는 있지만
흥분하며 붙잡고 있을 필요는 없다고.
또 지금 진행 중이지만
내가 바꿀 수 없는 일들 역시
나를 상처 입힐 만큼의 가치는 없다고 말한다.
그 일들을
굳이 선과 악으로 판단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그런 일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만 알면 충분하다고.
이 말들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삶에서 나를 가장 지치게 했던 순간들은
대개
상황 그 자체보다
'이건 이래야 했는데' 라는 생각 때문이었으니까.
물론
불공평한 것들을 외면하라는 말은 아니다.
변화는 여전히 필요하고,
노력은 여전히 가치 있다.
다만
세상의 모든 일이
내 생각과 같은 방식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요구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지 않았다고 해서
좌절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까닭 없이
마음이 힘에 부칠 때
이 질문을
가만히 품어 본다.
나는 오늘,
행복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저 존재해도 되는 사람인가.
오늘의 나는
무언가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로
그저 존재해도 괜찮은 사람이다.
월요일에는
그 정도의 허락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