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 대신 고른 말
새 학기, 두 번째 날.
각자 정한 1인 1역할을 실제로 해보는 시간이었다.
서유겸은 복도 쓸기 담당이었다.
그런데 복도로 나가더니
다른 반 친구와 마주쳤고
금세 장난이 시작됐다.
“유겸아, 들어와 봐. 지금은 수업 시간이야.”
조금은 단호하게 말했다.
아이의 입이 삐죽 나왔다.
“좀 더 어른스럽게 행동해야지.”
그때였다.
“저는 어른이 아닌데요?”
순간, 우리 사이에 시간이 잠깐 멈췄다.
예전 같았으면
“너 지금 선생님 말꼬리 잡는 거야?”
그 말이 먼저 나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은
아이의 말과 내 감정을
잠시 떨어뜨려 놓고 있었다.
그 말의 뜻을 헤아리는 사이
3초가 흘렀다.
그 사이에
유겸이의 귀가 점점 빨개지고 있었다.
아이도 아이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웃음이 났다.
맞다.
유겸이는 어른이 아니다.
고작 열 살이다.
그래서 말했다.
“그래, 그건 네 말이 맞아.
너는 어른이 아니지.”
유겸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혼날 줄 알았던 모양이다.
그 말을 할 때
나는 이미 단호한 얼굴이 아니었다.
선생님의 표정이 평안한지, 화가 난 건지
아이들은 귀신같이 알아챈다.
“하지만 수업 시간에 떠들지 않는 건
어른이라서가 아니라
학생으로서 지켜야 할 부분이야.”
훈계가 아니라 설명이었고,
대결이 아니라 안내였다.
잠깐의 정적 뒤에
우리는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묘하게, 동시에 웃었다.
서로를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유겸이는 다시 복도로 나갔고
이번에는 차분히 자기 역할을 해냈다.
다 끝난 뒤, 내가 불렀다.
“유겸아.”
우린 또 동시에 웃었다.
“아까 네 말, 우리 진짜 재밌었다.”
“제 말 맞잖아요. 헤헤.”
그리고 덧붙였다.
“그래도 앞으로는 더 좋은 선택을 해보자.”
유겸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오늘 나는
반응 대신 선택을 했다.
그 잠깐 멈췄던 3초.
유겸이에게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었을 것이고,
나에게는
말을 고르는 침묵의 시간이었다.
교사의 언어는
아이를 이기기 위한 말이 아니다.
아이 스스로 좋은 선택을 하도록 돕는
멈춤 뒤에 고르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