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어와 경계어

우리의 언어

by 온길

일상에는
두 종류의 말이 필요하다.


하나는 관계를 잇는 말,
다른 하나는 기준을 세우는 말이다.


나는 전자를 ‘연결어’,
후자를 ‘경계어’라고 부른다.


연결어는
관계를 부드럽게 잇고, 사이를 매끄럽게 유지하는 말이다.


“속상했겠구나.”
“그럴 수 있지.”
“네 마음 이해해.”

상대의 감정을 먼저 수용하여, 관계를 부드럽게 이어주는 힘이 있다.


그러나 연결어만으로는
질서가 세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경계어가 필요하다.


경계어는
공감을 지운 말이 아니라,
공감 위에 기준을 더하는 말이다.


“속상했겠구나.
그래도 친구를 밀어도 되는 건 아니야.”


이 문장에서
앞은 연결어이고
뒤는 경계어다.


교실에서도,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우리는 이 두 언어를 오가며 살아간다.



문제는
어느 한쪽에만 익숙해질 때 생긴다.


나는 오랫동안
연결어에 능한 사람이었다.


관계를 매끄럽게 만드는 일에
익숙했고,
웬만하면 부드럽게 조율했다.


그 방식은 틀리지 않았다.
실제로 많은 상황을 무리 없이 지나왔고,

관계 맺기에 자신이 붙었다.


그러나 리더의 자리에 서며
다른 질문을 만나게 되었다.


관계를 유지하는 것과
역할을 분명히 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연결어로 풀어보려 했다.
설명하고, 이해하고, 조율하면서
가능한 한 부드럽게 가고 싶었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서
판단했다.

이제는
경계어가 필요하다고.


그 말은 내게 쉽지 않았다.

평소 갈등의 기류를 불편해하던 사람이
그 긴장을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 나를 움직인 것은
감정보다는 책임이었다.

리더로서
내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판단이
두려움보다 앞섰다.


나는 선을 그었다.

결과는 예상만큼 매끄럽지 않았다.

얻은 것도 있었고,
잃은 것도 있었다.


공동체에는 유익했으나,

개인적으로는 편안함이 줄었다.


하지만 지나고보니

분명한 배움이 있었다.


경계어는
갑자기 꺼낼수록 단단하게 들린다는 것.
설명이 부족하면
차가움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것.


동시에,
경계어 없이 지속되는 관계는
언젠가 균형을 잃는다는 것도.


연결어는 관계를 잇고,
경계어는 관계를 지킨다.



나는 그 시간을 지나며
내 언어의 폭을 조금 넓혔다.


잇되 흐려지지 않고

세우되 끊어내지 않는 말.


두 언어를

함께 다룰 줄 아는 사람으로

여전히

여전히

배워가는 중이다.



수요일 연재
이전 16화보내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