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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과 새로운 시작

항공사 코드 : KE

by wwestin

2025년 3월 11일, 대한항공의 새로운 CI(로고 등 기업아이덴티티를 나타내는 모든 것)이 공개되었다. 리고 3월 12일부터 공항, 기내, 웹, 어플 등의 대한항공 CI가 새로운 CI로 교체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CI를 야심 차게 선포했지만, 아직까지는 호불호가 갈리고 있다. 아쉽다는 평도 상당하다. 아쉽다는 평이 나오는 종합적인 이유는 아래와 같다.


1. 태극마크

새로운 CI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사라진 '빨강 파랑의 태극마크'. 대한항공 태극마크의 단순화는 어쩌면 필요한 과정이다. 소비자가 더 어려지고, 디지털 매체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기존 CI보다 더 단순화된 CI가 필요하기는 하다.


하지만 태극마크는 굉장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상징이자, 국민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대한항공이 자랑스러울 때 "태극마크가 자부심이 느껴진다"라고 하고, 대한항공에 부정적인 이슈가 있을 때 "태극마크를 떼라"라고 한다. 그만큼 태극마크의 무게가 무거운 것이다. 또한 '빨간색과 파란색의 조합'도 단순한 색깔 이상의 의미가 있다. 동양국가에서는 태극무늬가 다양하게 사용되는데, 이 '빨간색과 파란색의 조합 태극무늬'가 다른 나라의 태극마크와 구별해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CI의 작업 과정을 조사해 보니, 태극마크를 상모놀이의 상모 끈과 연결시켜 해석했다고 한다. 외국인이 책임자였기 때문에 이러한 해석이 가능했던 것 같다.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한 점은, 선으로만 태극마크를 표현했을 때, "다른 동양국가에서 다양하게 사용되는 수많은 태극무늬와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이 것을 외국인에게 쉽게 설명하자면, 프랑스의 많은 기업들도 프랑스 국기에서 따온 남색, 빨간색, 하얀색 3선을 사용한다. 그런데 이 선을 프랑스의 상징인 에펠탑 철근의 꼿꼿함으로 해석했다고, 갑자기 고동색 삼선을 그린 것과 똑같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의 많은 기업들도 CI를 리브랜딩 할 때 이 3색의 조합에 대해서 굉장히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이러한 점 때문에 소비자들의 호불호가 제일 많이 갈리고 있다. 시대의 흐름상 대한항공 태극무늬 단순화는 필요한 과정이었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2. 이전보다 떨어지는 시인성

진짜 문제는 공항에서다. 특히 출도착 정보가 적힌 공항 안내판. 공항 안내판에는 수십 개의 항공사 로고와 항공사 이름, 목적지가 빠른 속도로 계속 바뀌며 보인다. 그것도 아주 작은 크기로, 빼곡하게. 예전에는 태극마크의 시인성이 워낙 좋아, 수십 개의 항공사 속에서도 대한항공 정보를 빠르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로고는 로고의 사이즈를 줄였을 때 시인성이 좋지 않아 한참 찾아야 한다. 얇은 파란 선으로 이루어져 있어, 멀리서 보면 백지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3. KLM과의 유사성

도장이 KLM항공과 너무 유사해졌다. 기체에 칠해진 하늘색과 남색 로고가 쉽게 구분되지 않아, 멀리서 보면 꼬리날개의 로고가 이전만큼 눈에 띄지 않는다. KLM인지 대한항공인지 분간이 안 간다. 기체에 쓰인 "KOREAN" 글자 덕분에 구별이 가능하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하나 든다. 대한항공은 엄연한 사기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소비자들이 왜 이렇게 아쉬움을 토로할까?


한국인들과 함께 성장한 대한항공

바로 대한항공이 가진 특별한 상징성 때문이다. 한국 최초의 항공사이자, 이제는 한국의 유일한 국적 FSC이다. FSC는 외국인에게 한 나라의 문화, 친절도, 음식 등을 모두 집약시켜, 한 나라의 첫 이미지를 선사하는 역할을 한다.


과거로 조금 더 들어가 보자. 한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비행기를 이용한 화물 수출은 물론, 기업들도 성장하기 위해서는 결국 해외 시장으로 진출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대한항공을 이용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항공사이자, 가장 많은 노선을 가진 항공사이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이 현재는 아시아-태평양 횡단 노선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가지고 있지만, 이렇게 급격하게 성장하기까지 6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항상 외항사를 타고 해외를 나갔는데, 태극마크를 단 비행기를 타고 드디어 해외를 갈 수 있을 때 느낀 첫 감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감격스러웠을 것이다. 아직도 해외 근무를 하거나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이, 본인이 거주하는 지역에 대한항공이 취항하게 되면 위와 같은 말을 똑같이 한다.


그만큼 대한항공은 한국인들에게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국 대표인 만큼 더 멋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다. 무엇보다 대한항공은 말 그대로 "제일 중요한 국적기" 위상을 가지고 있다. 엄연한 사기업이지만, 공적인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대한항공이 위기일 때, 국민 세금이 긴급 투입되기도 한다.




이번 리브랜딩이 아쉬운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너무 좋은 변화라 여기는 점도 있다. 바로, 프리미엄 클래스의 업그레이드. 퍼스트 클래스와 프레스티지 클래스(비즈니스 클래스)의 서비스와 하드웨어 수준이 확 올라간다.


그동안 대한항공의 프리미엄 클래스는 말이 많았다. 가격은 타 항공사에 비해 비싼 편인데, 시설과 서비스 부분에서 없는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라운지의 음식 종류, 라운지의 누들바, 시그니처 칵테일과 음료, 2020년대에 걸맞은 좌석, 제대로 된 순서를 갖춘 기내식 코스, 고급스러운 어매니티 등등. 얼핏 뽑아도 이 정도다. 그간 승무원 분들의 친절한 서비스 하나만 믿고, 배짱 장사를 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1. 좌석 개조

당장 유럽 노선의 프레스티지 클래스 좌석을 보자. 2000년대에나 쓰일 비즈니스 좌석인 "2-3-2 배열 프레스티지 슬리퍼"를 아직도 런던, 파리, 프랑크푸르트 등 유럽 고수요 노선에 투입 중이다. 그렇다고 가격이 싸지도 않다. 드디어 이 오래된 좌석들을 싹 떼어내고, 프레스티지 스위트 2.0으로 개조한다고 한다. 2028년 목표로 새로운 일등석 좌석도 개발 중이다. 다만, 안 좋은 소식은 이코노미 좌석 간격이 더 좁아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기존 3-3-3 배열의 이코노미 좌석이, 3-4-3 배열로 바뀔 수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2. 이제 제법 비즈니스 클래스 다운 장거리 기내 용품

드디어 장거리 프레스티지 클래스에서 매트리스를 제공한다. 대한항공은 일등석에만 매트를 제공했다. 프레스티지 클래스는 담요만 하나 준다. 이불이 아닌 담요. 우스갯소리로 고스톱 담요라 불리는 그 담요. 타 항공사 들은 자국 침구 브랜드, 또는 유명 브랜드들과 협업하여, 좌석에 깔 매트와 포근한 이불을 제공하는데 대한항공은 그런 것들이 일절 없었다. 이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시그니엘에 들어가는 이탈리아 브랜드 "프레떼(Frette)"의 침구류를 제공한다. 이제 제법 프리미엄 클래스 이름값을 한다. 일등석 기내 편의복도 업그레이드가 되고, 슬리퍼도 지금 종잇장 같은 슬리퍼에서 두텁고 푹신한 슬리퍼로 교체된다.


어매니티도 바꾼다. 요즘 동네 수영장 갈 때도 안쓸 파우치를 영국 브랜드 그라프(GRAFF)와 협업한 파우치로 변경한다. 이제 대한항공의 일등석, 프레스티지석 파우치도 타 항공사의 파우치만큼 소장하고 싶은 파우치가 되었다.



3. 이제는 "기내정찬"

기내식도 업그레이드한다. 기존 "비빔밥"으로 집결되던 한식 메뉴를 더 다양화한다. 이미 공개된 메뉴만 하더라도 문어영양밥, 전복덮밥, 차돌박이비빔밥, 신선로. 훨씬 다양해졌다. 메뉴판 이름도 "기내 정찬"이라고 바뀌었다. 대한항공의 새로운 각오가 보이는 이름이다.


4. 드디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라운지

가장 큰 문제였던 라운지도 개선된다. 누들바, 베이커리 스테이션 등을 추가한다. 공간 역시 확장하고, 내부 인테리어도 보다 고급스럽게 탈바꿈한다.


많은 사람들이 대한항공 프리미엄 클래스를 피했던 이유는 '본전 생각' 때문이었다. 같은 돈이면 훨씬 좋은 좌석, 훨씬 좋은 용품을 갖춘 옆나라들의 프리미엄 클래스를 탑승할 수 있다. 다른 것을 다 떠나서, 좌석 자체부터 수준이 많이 밀린다. 기재 변경도 굉장히 잦다. 프레스티지 클래스에 탑승하면 꼭 몇몇 분들이 승무원 분께 말씀을 하신다. 이 좌석 대체 언제 바꾸냐고. 예약할 때는 최신 좌석이 달린 비행기가 운항한다고 하고서는, 출발이 임박하면 꼭 이런 좌석이 달린 비행기로 갑자기 바꾼다고. 도대체 몇 번째냐고. 수습하시는 승무원 분들을 볼 때면 항상 안타깝다. 대한항공 승무원 분들의 서비스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 하드웨어에 어떻게 이런 서비스가 가능한지 놀라울 따름이다. 아마 승무원 분들이 안 계셨다면, 대한항공의 명성을 이어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야기가 좀 달라질 것 같다. 그동안은 이미 잡은 한국인 수요를 가지고 한국에서만 1위를 하려고 했다면, 지금부터는 해외 항공사들과 제대로 경쟁해보겠다는 마음가짐이 느껴진다.


사실, 발표된 프리미엄 시설과 용품들을 보면 아직도 타 항공사에 비해 우위는 아니다. 당장 옆나라 일본, 홍콩, 대만 항공사들과 비교해도 압도적인 우위가 아니다. 그렇지만 이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국적 FSC인 만큼, 아시아 1위 항공사가 될 수 있도록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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