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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전원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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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진 Aug 18. 2021

참라면, 이거 알면 적어도 80년대생

어린 시절의 내 최애 간식은 참라면이었다. 

인연은 미취학 아동일 때로 거슬러 간다. 6살 무렵, 시내에 사는 작은엄마네 놀러 갔다. 5층 높이의 아파트가 모여 있는 단지 내에는 작은 놀이터가 있었다. 놀이터는 내게 신세계였다. 놀이 장소는 앞마당이 전부였고, 미끄럼틀과 그네는 국민학생이 되어야 학교에 들어가야 운동장에서 볼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내 집 앞에 미끄럼틀과 그네가 있다니, 와우!

하루 종인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도 지루하지 않았다. 나를 챙기던 작은엄마(당시 임신 중이셨다)가 지쳐서 집에 올라간 뒤에도 놀이터 구석구석을 누볐다. 그런데 한쪽에 동네 언니들이 모여 있었다. 무엇을 맛있게 먹으면서.

나는 처음 보는 언니들에게 가까이 다가갔고, 라면을 발견했다. 끓여서만 먹는 줄 알았는데 또 다른 신세계를 발견했다. 

"나도 좀 줘."

"싫어."

언니들은 몸을 돌렸다. 나는 몇 번 더 사정하다가 분한 맘에 작은엄마에게 갔다. 

"작음마, 백 원만 주세요."

"뭐하게?"

"과자 사 먹게요."

작은 엄마는 백 원을 꺼내 주며 말했다.

"라면 같은 거 사 먹으면 안 된다."

어떻게 알았지? 엄청 뜨끔했지만 일단 알았다고 대답했다. 아파트 단지에 있는 커다란 슈퍼에 가서 라면 한 봉지를 샀다. 오, 여기 슈퍼에는 계산대라는 게 있었다. 백 원을 내미는 순간 어른이 된 것 같았다. 나는 곧장 놀이터로 돌아갔다. 언니들은 이미 라면을 다 먹고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그 앞에서 보란 듯이 라면 봉지를 뜯었다. 

"조금만 주라."

언니들이 내게 다가왔다. 나는 라면 봉지를 손에 꽉 쥐고 말했다.

"싫어. 언니들도 안 줬잖아."

"야, 우리 쟤랑 놀지 말자."

무리 중 한 명이 뱉은 말에 다 같이 우르르 놀이터 밖으로 달아났다. 지금까지 같이 논 적도 없었는데 나는 갑자기 외톨이가 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필사적으로 소리치며 언니들을 향해 뛰어갔다. 

"같이 놀자."

내가 가까이 가면 언니들은 또 다른 곳으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다시 달렸다. 

잠시 후, 눈꺼풀 위로 따뜻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나는 그 액체를 손으로 닦고서 다시 언니들을 찾았다. 그때 어떤 아줌마가 내게 다가왔다.

"어머, 얘? 괜찮니? 어디 사니?"

"작은엄마네 놀러왔어요."

나는 아줌마 손에 이끌려 길가로 나왔다. 저 멀리 작은엄마가 사색이 되어 내게 오고 있었다. 

그러고는 작은엄마와 약국에 갔던 기억이 난다. 

"이건 밴드로 안 될 것 같은데. 보건소에 가보세요."

나중에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되었다. 

내가 언니들의 뒤를 쫓아 목욕탕 건물을 올라가다가 계단에서 넘어졌고 이마가 깨져 피가 흘렀던 것이다. (신기하게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목욕탕 아줌마가 한쪽 얼굴이 피에 덮인 나를 발견했고, 기겁해서 엄마를 찾아주려고 건물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고 한다. 작은엄마는 집에서 놀이터를 내려다봤는데 내가 보이지 않자 부리나케 찾으러 나온 것이고. 시장 입구에서 피범벅이 된 내가 낯선 아줌마의 손을 잡고 있었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아이를 유산하지 않은 게 다행이다. 

결국 그날 침대에 누워 이마를 몇 바늘 꿰맸다. 작은엄마는 나보다 훨씬 무서워하며 내 발 아래쪽 침대 난간을 붙잡고 쪼그려 앉아 있었다. 

"하나도 안 아파요."

이마에 하얀 반창고를 붙이고, 주제에 작은엄마를 위로했다. 

그때만 생각하면 작은엄마 태교에 도움을 주지 못한 것이 참 미안하다. 작은엄마 말로는 내가 이마를 꿰맬 때까지 손에 참라면을 꼭 쥐고 있었다던데. 그러고 보니 핀잔을 들었던 기억은 난다.

"라면 사 먹었네. 아니라더니."

라면이라는 소중한 친구가 있었기에 울지 않고 치료를 잘 받을 수 있었나 보다. 


*참라면

오뚜기에서 1988년에 출시한 라면. 당시에는 뿌셔뿌셔나 쫄병스낵 같은 과자가 없었다. 별사탕이 들어 있는 라면 모양의 뽀빠이 과자가 유일한 라면 과자였다. 참라면은 부숴 먹는 게 진리였다. 끓이면 그 감칠맛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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