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때문이 아니었을지도
“내가 니 생일 축하해 줄게. 학교 운동장에서 11시에 만나자.”
초등학교 겨울방학을 앞둔 어느 날, 친구가 말했다. 1월 1일이 생일이어서, 그보다는 친구가 많지 않아서 생일잔치를 제대로 할 수 없었던 나를 위해 학교에 오겠다면서. 참 착한 아이였다.
착한 아이? 나보다 공부 못하는 애, 친구가 별로 없는 애, 몸이 약한 애는 다 착한 애였다. 내가 언제든지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그 아이들에게는 잘 보이려 하지 않았고, 특별히 챙겨주지 않아도 되고 언제든 내가 원할 때면 옆에 둘 수 있는 존재.
나는 속물이었다. 학급에서 인기가 좋은 애와는 가까워지려 부지런히 노력했다. 과자도 주고 어쩌다 온 부탁을 진심으로 들어주면서 환심을 사려 했다. 스스로 인기인이 되려는 바람은 없었고, 인기인과 아주 가까이 지내고 싶었다. 그 애와 있으면 왠지 또래보다 나은 존재가 된 것 같고 다들 날 부러워할 것 같았으니까.
하교 길에 항상 집에 같이 갈 친구가 필요했다. 혼자서 교문을 지나치는 일은 정말 끔찍했다. (중학교 때까지 집에 같이 갈 친구가 있을지 늘 고민이었다.) 친구가 많은 편은 아니었는데 인기인과 같이 있으면 내 주위에도 친구들이 북적였고, 많은 애들이 말을 걸어주었다. 매우 희박한 경험이었다.
나는 대부분의 등하굣길을 조용하고 존재감 없는 아이들과 함께했다. 어쩌다 인기 있는 애들과 섞이게 되면 나는 어제까지 옆에 있어주던 아이는 잊고 금세 그들을 따라갔다. 하하 호호 얼굴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행복의 하루가 끝나면 평소 나와 동행하던 아이에게 집에 같이 가자고 말했다. 무리에 끼어 있을 때를 그리워하고, 조용한 아이와 같이 논다는 걸 부끄러워하고, 혼자 있지 않다는 사실에 안심하면서.
생일 때 학교에 와주겠다던 아이는, 내 기준에 착한 친구였다. 생일 축하해 주러 일부러 학교에 나오는 친구가 있다니 부모님도 좋아할 거고, 나 혼자 눈치 보거나 신경 쓸 다른 친구들도 없으니 마음의 대화도 실컷 할 수 있을 거였다.
“학교 다녀올게요.”
방학 때 학교를 가는 건 정말 귀찮은 일이었지만 이날은 아니었다. 씩씩하게 인사가 절로 나왔다.
11시, 11시 30분, 12시가 지날 때까지 운동장을 맴돌았다. 그네에 앉았다 철봉에 매달렸다 친구 집으로 가는 후문을 기웃댔지만 인기척은 없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운동장에 편지를 남겼다.
‘너를 기다리다 배가 고파져서 먼저 집에 가. 니가 나를 기다릴까 봐 편지 남겨. 개학하고 만나자.’
친구가 올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을까, 착한 친구가 안 올 리 없다는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아니, 방학인데 학교에 와서 뭐하는 거야?”
학교 수위 아저씨가 한 말이 따갑게 들렸다. 뾰족한 바늘이 되어 내 눈물주머니를 터뜨렸다. 눈물이 줄줄 새어나오는 얼굴을 닦은 뒤 집에 돌아갔다. 엄마는 다 알았을까. 말없이 돌아온 나를 위해 안 매운 떡볶이를 만들어주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떡볶이를.
그때도 나는 떡볶이를 좋아했구나.
그때도 나는 내 곁에 있는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지 못했구나.
그렇다면 지금도 역시 다른 존재를, 다른 삶을 동경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