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는 가끔 외지인이 물건을 팔러왔다. 엄마는 화장품 파는 아줌마와 특히 친했는데 아줌마가 다녀가면 엄마 화장대에는 채시라 아줌마가 선전하는 '코리아나 화장품'이 놓여 있곤 했다.
한번은 정수기 장사가 동네를 방문했다. 지하수를 퍼올려 벌컥벌컥 마시는 동네에 정수기 장사라니. 암튼 부모님이 물을 한 컵 떠다주자 그 사람은 물을 정수해 마셔야 한다면서 컵에 고데기같이 생긴 기구를 넣고 작동시켰다. 서서히 초록색 이물질이 생겼다. 물을 분해시킨 건데 색이 짙으면 안 좋은 거란다. 엄마 아빠는 콧방귀도 뀌지 않고 내쫓다시피 그 사람을 돌려보냈다.
"우리 집 물이 얼마나 깨끗한데."
아빠의 말에 나도 오기가 생겨 그 컵에 있는 물을 마시려 했다. 우리 집 물이 깨끗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은 괜한 오기에서였다.
"안 돼. 그거 마시지 마."
엄마 아빠가 동시에 소리치며 달려왔다.
낮에 백과사전이나 위인전 같은 전집을 파는 사람이 방문했었나 보다. 학교에서 돌아오니 책이 잔뜩 꽂혀 있었다. 당시 백 만 원도 더 주고 산 책이란다. 아빠는 사기꾼에게 속았다며 노발대발했다. 그날 집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솔직히 백과사전은 재미없었지만 위인전은 여러 번 읽었다. 학교가 끝나면 과자와 책을 들고 책상 밑으로 들어가 책을 읽었다. 나만의 작은 공간이었다. 서양의 위인들처럼 나무 위의 집이나 다락방을 가지지는 못했어도 나름대로의 공간을 찾은 셈이다. 과자를 다 먹거나 책을 다 읽은 뒤에만 책상 아래에서 나왔다. 위인들과 아주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특히 위인들의 어린시절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는데 은근히 내 자신과 동일시하려 했다.
장영실이 마당에 나뭇가지로 그린 그림이 눈길을 끌었다는 장면을 생각하며 나도 마당에서 종종 그림을 그렸다. 나폴레옹이 바다를 내려다보며 꿈을 키웠다고 하니 나도 괜히 대문에 세워진 오토바이 위에 앉아 세상을 내려다보려 했다.
한석봉의 어린 시절은 정말 유명해 다들 알 것이다. 옆집 담장을 넘어갔어도 본인 감나무라는 것을 알리려 이웃집 창호지 문에 팔을 불쑥 집어넣는 이야기,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은 이야기, 쌀 한 가마니의 개수를 헤아린 이야기 등. 말썽꾸러기였지만 총명했고 훗날 큰 인물이 되었다니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마침내 그 기회가 찾아왔다.
책에만 빠져 지내다가 학교 시험을 망쳤다. 성적표가 나온 날, 엄마에게 호되게 혼나겠구나 싶었다. 한석봉도 어릴 때 종아리를 꽤 맞았다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엄마의 꾸지람이 무섭지 않았다. 나는 비장한 표정으로 표준전과와 성적표를 황금 보따리로 싼 다음 그 위에 회초리를 올려 엄마에게 내밀었다.
"어머니, 이번에 성적이 좋지 않습니다. 저를 꾸중해 주세요."
종아리를 맞는 아픔 쯤은 견딜 수 있었다. 위인은 시련을 겪기 마련이니까. 엄마는 내가 준비한 보따리에 적잖이 감동한 듯 보였다.
"그, 그래. 괜찮아. 다음에 잘하면 되지. 이 물건들은 제자리에 도로 가져다놓자."
엄마는 아예 혼내지도 않았다. 역시 엄마는 보따리장수에게 인심이 후했다. 아니면 내가 드디어 위인이 된 걸까?
*나만 모르던 내 어릴 적 이야기
부모님은 내가 책에 빠져 살아 걱정이 많았다고 했다. 특히 책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나. 책을 다 버릴까 고민도 했단다. 지금 교사가 된 동생이 이 사실을 알려주면서 말했다.
"어릴 때 언니는 진짜 특이했어. 근데 다시 생각하면 천재였던 것 같아. 그때 잘 지도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진짜 위인이 됐겠지. 천재이고 싶은 나는 사실 지금도 충분히 특이하다. 증세는 한층 위중해졌다. '앵무새 죽이기'의 하퍼 리 작가처럼 나의 처녀작이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을까, 40세에 혜성같이 등단한 박완서 선생님처럼 40세가 되었을 때 멋진 작품을 발표하게 되지 않을까 꿈을 꾸곤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