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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소요 Jan 09. 2023

후회에 대하여

나에게 보내는 사과

단 몇 초 전의 일도 아쉬워하고 후회하는 사람으로 살면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후회를 쌓아오고 있다. 다른 후회들은 이제 다 흐려지고 희석되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유독 날이 갈수록 또렷해지는 것들이 몇 개 있다. 그건 교사로서의 나의 행동에 대한 후회들이다. 그때 내가 더 적절한 판단을 했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들이 한참 지난 지금에까지 꽤 자주 떠오른다.

나는 몇 년 전 한 남고에서 근무했다. 그때 나는 내 본래 성정보다 좀 소극적이고 움츠러들어 있었다. 많은 아이들이 나를 스승보다는 만만한 젊은 여성으로 본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그때 나는 너무 쉽게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가끔은 때리는 중년 남성 교사들을 목격하고 충격에 빠진 상태였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해야 할 말을 하지 않았던 적이 많다. 아이들을 감정적으로 대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이 지나쳐 지적하고 바로잡아야 했던 순간을 그저 참고 넘겨버렸다. 깊이 후회한다.


A반에서 수업이 끝나고 잡담을 주고받는 순간에 한 학생이 선생님은 아르바이트 어떤 거 해보셨어요? 하고 묻길래 나는 과외만 주로 했다고 답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아이가 지잡대 나왔는데 과외 받아줘요? 라고 외쳤다. 다른 아이들 앞에서 과시적으로 행동하고 싶었던 것인지, 그저 무례한 아이였던 것인지 모르겠다. (평소의 언행을 근거로 보면 둘 다인 것 같다) 이때 나는 그냥 웃으면서 적당히 답해줬는데 그러면 안되는 거였다. 타인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도 있는 말을 해선 안된다고 분명히 알려줄 걸 그랬다. 너에게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들은 너보다 못나거나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저 존중의 가치를 아는 것이며 너는 그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지적해줄 걸 그랬다. 존중을 할 줄 모르는 것, 또는 알면서 행하지 않는 것에 큰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고 알려줄 걸. 그 부끄러움을 두고 두고 곱씹으면서 살아가야 조금이나마 인간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가르쳐 줄 걸.


또 한 번은 B반 아이들이 선생님, 부산 가서 연락하면 맛있는 거 사줘요? 하고 물었다. 부산 오기나 해, 하고 대충 넘어가려 했는데 장난끼가 많은 다른 아이가 저 부산 가면 선생님 본가에서 재워주세요 하고 말했다. 우리 엄마아빠가 허락 안 한대, 하고 또 넘어가려 했는데 교실 조금 뒤편의 한 아이가 조금 작은 소리로 오 그럼 부산 가서 **(내 이름)이랑 하룻밤? 하고 자신의 주변 친구들만 들리게끔 말했다. 그리고 하룻밤? 하룻밤? 하고 반복적으로 이죽거렸다.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어떤 의도로 한 말인지 그 순간 곧바로 인식했다. (이런 부류의 말에는 살아오면서 겪은 데이터가 무수해서 이제 거의 자동화되어 처리된다. 그렇지 않나요? 여성분들.)  평소에도 악질적인 언행을 자잘하게 많이 하는 아이였다. 나이 많은 남교사 시간엔 죽은 듯이 있고 내 수업 시간엔 과하게 큰 소리로 상황에 맞지 않으며 나에게 모욕을 주려는 말을 시도하는 아이였다. 학기 중반 내가 크게 화를 낸 이후로는 흥미가 떨어져 그만둔 줄 알았는데 내 착각이었다. 그 즉시 그 언행은 성희롱이며 매우 폭력적인 말임을 지적하고 합당한 처벌을 받게 할 걸 그랬다. 나는 못 들은 척 했다. 부끄럽게도. 당시 내 위치에 대한 인식이 나를 망설이게 했다. 물론 그 상황에서 내 잘못이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세상이 워낙 꼬이고 괴상해서, 그 세상에 살면서 학습된 무기력이 너무 두터워서 나는 가만히 있었다. 그러지 말 걸. 그 학생이 내 지도에 불응하고 내게 더 폭력적인 태도를 보이더라도, 그래서 내가 아이들이 다 보는 앞에서 어떤 상처를 입더라도 그건 잘못된 말이라고 분명히 지적할 걸. 뒤에서 메갈년 소릴 듣더라도 성희롱적 발언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알려줄 걸. 


나는 그냥 무서워서 피했다. 그러면 안되는 거였다. 그 아이에게도, 그 현장을 보고 있던 그 학급의 다른 아이들에게도 그러면 안되는 거였다. 잘못된 행위가 잘못됨을 지적 받고 시정되는 것을 보여줬어야 하는 건데. 그런 식으로 은근히 용인되도록 내버려 두어선 안되는 거였다. 그 아이들이 더 큰 세상에 나아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났을 때 비슷한 일들이 생길 가능성을 남겨두어선 안되는 거였는데. 고등학생 시절은 어쩌면 인간의 부족함과 그릇됨을 채워넣고 바로잡을 수 있는 공식적인 마지막 시기일지도 모르겠다. 그 이후로는 성인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과도한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니까. 미성년이라는 보호와 관용 속에 있을 때 더 나은 인간이 될 준비를 충분히 해두어야 하고, 그 누구보다 이러한 역할에 조력자로서 적합한 명패와 자격을 지닌 교사가 그걸 바로 옆에서 도와야 하는 건데. 나는 그 아이들이 괴물로 자라게 할 그 불씨를 얼른 발로 밟아 꺼트렸어야 하는데 그걸 발견하고도 모른 척 몸을 숨긴 셈이다. 내가 손상되는 것이 두렵다는 이유로. 나의 알량한 자존심을 보호하기 위해 나의 책임을 회피하고 유기한 것이다. (또 결과적으로 나를 지키지도 못했다. 모른 척 넘어간 것이 오히려 나를 더 깊이 상처 입혔다. 24살의 솔잎이가 그런 모욕을 입었는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넘어가다니. 게다가 그런 일들이 쌓이다 그 다음 해 더 큰 성폭행에 휘말렸다. 그때의 나에게도 미안하다.) 진심으로 후회한다. 


뚜렷하게 떠오르는 일화가 위 두 가지일 뿐 비슷한 순간은 수없이 많았다. 어쩐지 나를 끌어내리는 것을 즐거워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몹시 성적으로 의식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그때마다 내가 고른 선택지가 모른 척이었다는 것이 너무나 유감스럽다. 평소에 늘 다짐하던 것을 직접 맞닥뜨렸을 때 행동으로 옮기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럼에도 나는 용기를 내야 할 이유가 있는 직업에 속해 있다.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해야 이런 용기를 당연한 듯 낼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이 후회들을 상쇄시킬 수 있는 바람직한 행동을 더 많이 쌓으면서 살아가면 되는 것인지, 아니면 계속 지니고 살면서 반성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잘 사는 것은 쉽지 않고 바르게 사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후회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앞으로도 후회할 일을 하지 않을 자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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