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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na Cho Feb 06. 2024

토리얘기 말고 제 얘기도 한 번 들어 보실래요?

글을 쓸 때 다리가 불편하다,

아프다란 얘기를 여러 번 쓴 적이 있는데

얼마나 불편한지 나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우선 나는 혼자 사는 1인가구이고,

적성에 맞지 않은 직장생활을 한 직장에서

오랫동안 하고 있으며, 몇 년 전엔

작은 9평 빌라를 대출을 받아 구입하면서

은행과 회사의 이중 노예가 되어 맞지도

않은 직장을 그만두지도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나는 선천적 질환으로 다리가 약하고,

나이에 비해 키만큼이나 발크기도 작다.

내 신발 사이즈가 200 사이즈이고,

그래서 신발은 아동용만 신을 수 있다.

나는 대학교 4학년 1학기까지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왔고, 즉 4학년 1학기까진

휠체어를 타고 대학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나는 졸업과 취업을 앞두고

피나는 노력 끝에 휠체어에서 목발

두 개를 짚고도 모라자 발목부터 허리까지

오는 무거운 보조기에 의지해 두 발로 서는

연습을 해서 지금까지 휠체어를 버리고

근근이 두 발로 걸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처음 휠체어에서 일어나 한 발을 떼는데도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면서 대문 턱 하나

넘는데도  수십 분이 걸릴 정도였고, 그런

내 뒤에는 누군가가 꼭 서있어야만 그나마

한 발이라도 뗄 수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근 세 달을 매일 하루 수십 번씩 연습을

하자 집안에서 문 앞까지, 그리고 집과 좀

거리가 있는 놀이터, 근거리에 있는 슈퍼까지

가동범위를  차츰 넓혀가며 4학년 1학기

방학이 끝나고 2학기때 학교로 돌아왔을

때부터는 휠체어를 버리고 두 발, 아니 양쪽

목발까지  네 발로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휠체어를 탔을 때도 늘 나를 도와주던

친구들이 있었는데, 휠체어를 버리고도

느림보 걸음걸이로 수업에 빠지지 않고

참석할 수 있도록 친구들 역시 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었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당시 나는 휠체어를 타고는

취업을 할 수 없단 생각과, 어서 취업을 해서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삶을 살아가야겠단

신념에 사로잡혀 불타는(?) 의지로 졸업을

앞두고 수십 년을 타오던 휠체어에서

일어나 살 수 있었던 거 같다. 아마 먹고사는

문제가 걸리지 않았다면 할 수 없었을

거 같기도 하다.


'신념'이란 단어가 딱 맞는 거 같다.

내가 중학교 때 홀로 된 엄마도 몸이

아파서 일을 할 수 없었고, 언니들이

주는 용돈으로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까지 그 생활에 얹혀살 순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하루에도 수십 번씩 움직일

때마다 익숙한 휠체어로 손이 가는

것을 거두고 집안에서나, 밖에서나

두 손으로도 들기 무거운 보조기를

허리까지 채우고 양쪽 겨드랑이엔

목발로 있는 힘껏 지탱하고 움직였다.

지금은 그나마 보조기가 가볍게 잘

나오는 거 같은데, 그땐 진짜 쇠덩어리

그 자체였다.


그래도 그 당시 결혼한 언니들이 엄마집

근처에 살아서 집 밖을 나올 때는 언니들이

늘 함께 보조기 신는 거부터 안전한 가드가

되어 주어서 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언니들은 내가 벌벌 떨면서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더 긴장된 손으로 양손을

뻗어 내 뒤를 든든하게 받쳐주고,

느림보 걸음인데도 재촉하는 법 없이

집에서 코앞에 슈퍼를 가는데 1시간이

걸려도 뒤에서 묵묵히 응원을 해주었다.

늘 옆에서 응원해주던 언니, 이만큼 걸을 수 있게 말이다.

이런 내 상황을 알다 보니 친구와 얘기 중에

대학 동기중 한 명이 교수가 되었다 해서

내가 친구들한테 대단하고, 부럽다고 말하자,

그동안 내 옆을 지켜주던 친구가 대단한

걸로 따지면 그 교수가 된 대학동기

보다 내가 더 대단하다고 말을 해주었다.


어릴 땐 가난하고, 몸도 건강하지 않게

태어나서 좌절도 겪었지만, 내가 지금

당장 가진 것이 많이 없었기 때문에 늘

주도적으로  삶을 이끌어가야 한단 생각과,

나 때문에 고생한 엄마한테 효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삶을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다리가 불편하다 보니, 남들이 5분이면

갈 거리를 2~3배는 걸려 움직여하고

그래서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으면 뒤쳐질

수밖에 없던 상황에서 뭐라도 하려고

꾸준히 하다 보니 그렇게 열망하던 대학 

졸업을 하면서 바로 취업을 있었고,

그래서 졸업 이후론 지금까지 경제적인 지원

한 번 받지 않고 스스로 살아가고 있다.


가만히 뒤돌아 보면 휠체어를 타고 생활

할 땐 내가 이렇게 혼자서 돈을 벌며

살 수 있단 생각을 많이 해본 적이 없다.

물론 누구한테 의지해서 살아갈 데가

없다는 건 명확히 알고 있었지만,

진짜 이렇게 혼자서 살아갈 수 있을까에는

늘 두려움이  있었지만 결국 지금까지

오~래도록 1인가구로 살아가고 있다.


혼자 스스로 살아가는 것에 열망이 지나쳤

던  거 같기도 하다...


나는 대범하거나, 탐험심이나 용기가

투철한 사람이 아니다, 소심하고

에스컬레이터도 못 탈 정도로 겁도 많은

사람이다. 

사실 걸음이 느린 데다, 목발까지 있다 보니

자동으로 움직이는 엘스컬레이터에

한 발 떼는 것이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매번 쉽게 갈 수 있는 방법을

포기하고 엘리베이터가 없으면 계단을

이용해야만 했는데, 이게 나 혼자일 때면

어쩔 수 없으니 힘들지만 한 계단 한

계단 조심조심 이용하면 됐지만, 이게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땐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한테도

민폐가 되었다. 그래서 늘 본인만 믿고,

본인한테 의지해서 한 발만 떼라고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매번 탈 때마다  

실랑이 아닌 실랑이를 펴었는데 어느 날은

이런 소란을 더 이상 이겨 낼 수가 없어

언니나 친구와 함께 본격적으로

에스컬레이터 타기 연습을 할 정도였다.


세상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이 살아왔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무슨 바보 같은

행위 인가 싶겠지만 다리가 불편하다 보니

남들이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하는 활동

하나도 나한텐 이렇게 여러 실랑이와

무수한 연습이 필요했다.

그렇게 바닥에서 입과 발을 맞춰서 '하나, 둘,

셋'하면서 선을 넘어 한 발 떼기 연습을

무수히 한 뒤에 나는 실제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이제껏 연습했던 대로

'하나, 둘, 셋'을 서로 외치고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에 결국 첫 한 달을 떼어 옮기는

것을 실행 할 수 있었고, 그렇게 경험이 생기다

보니 서서히 호들갑(?) 떨지 않고

에스컬레이터를 탈 수 있게 되고

결국은 혼자서도 탈 수 있게 되었다...


신세계다, 이렇게 편한 걸 왜 진작에

타지 않았을까, 그래서 지금은 어딜 가면

에스컬레이터가 있는지 먼저 찾게 된다.


이렇게 나는 신생아가가 옹알이를 하고,

돌이 지나 아이가 첫 한 발자국을 떼듯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 타기에도

도전을 했다.

역시 처음엔 언니나, 친구가 늘 함께

연습에 동행이 되어 주었다.


한가한 시간 때만 골라

있었지만 그나마도 자리가 없으면

타기 어려웠다.

빈 좌석이 없으면 손잡이를 잡는다고

하더라도 손힘만으론 균형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나, 둘씩 연습을 통해

넓은 세상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고, 혼자서 해외여행도 갈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세상 속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도

휠체어대신 목발을 짚으면서 할 수

있었던 것들이기에 휠체어론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이동에 불편함이

많은지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상상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취업을 해서 자동차를 구입하면서

부터는 대중교통을 거의 일이 없지만

가끔 장애인들이 지하철에서 좀 더 편리한

대중교통  이용을 위해 시위를 하는 장면을

기사로 보게 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사실 지하철 출구에 엘리베어터가

있으면 휠체어 승객뿐 아니라, 유모차를

이용하는 사람도 얼마나 편하게 아이와

함께 이동을 할 수 있을는지... 또

우리가 늙어서 다리라도 아프게 되면

또 그때 우리는 그들이  어렵게 얻은

그 엘리베이터를 줄을 서서라도 타게

될 것이다.


뭐 내가 장애인 대표도 아니고,

뭔가 행동적으로 우리나라 장애인들을 위해서

하는 것도 없지만 단순히 장애인들이

하는 시위에 색안경부터 끼고 볼일은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적어도 그들 입장이 돼 보지 않은 사람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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