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나고 자란 내가 육지로 이사한 이유

시골땅과 가까운 육지로 이사하다

남편은 일주일에 한 번씩 육지로 출근을 했다. 제주에서 배를 타고, 다시 육지의 시골로 들어가는 출근길이었다. 배를 타고 몇 시간을 이동해 도착한 그 땅에서 남편의 취미생활은 이어졌다. 돌담을 쌓고, 대나무로 무언가를 만들고, 활을 쏘고, 그 시간을 기록해 유튜브에 올린다. 그 일은 남편에게 일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감각에 가까웠다. 혼자만의 취미로 끝내지 않고 시청자들과 나누고, 응원을 받으며 더 즐거워했다.


비닐 온실.jpg 남편이 만든 대나무 비닐 온실


문제는 현실이었다. 일주일마다 오가는 배편과 교통비, 숙박비. 아직 넉넉하지 않은 우리 집의 형편. 그럼에도 남편은 그 땅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이 시간을 지킬 수 있을까.


“차라리 근처로 이사하는 건 어때?”


하지만 그 땅 주변은 인프라도, 생활도, 아이들 학교도 쉽지 않은 선택지였다. 그래서 방향을 바꿨다. 땅 옆이 아니라, 땅으로 가기 쉬운 곳.


“아, 육지 땅 계약할 때 가봤던 곳 있잖아. 순천 어때?”

“맞아. 제주시랑 분위기도 비슷하고, 시골 땅이랑은 차로 한 시간이잖아.”


그렇게 우리는 시골 땅과 가까운 도시, 순천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지도부터 펼쳤고, 인터넷으로 생활 환경을 하나씩 살폈다. 순천은 완전히 낯선 도시가 아니었다.


땅 계약을 하러 부동산에 갔을 때 그곳에서 점심을 먹고, 아이들과 거리를 거닐고, 근처 학교의 모습도 구경했었다. 그때의 도시 분위기가 이상하게도 따뜻하게 남아 있었다. 이미 몇 번 오갔던 도시였기에 이번에는 인터넷을 통해 조금 더 자세히 정보를 확인해 나갔다.


도시는 생각보다 단정했고, 아파트가 밀집해 있었으며 생활 편의시설도 잘 갖춰져 있었다. 아이들 학교도 찾아봤다. 아, 여기면 되겠구나. 이 정도면 아이들 생활도 크게 흔들리지 않겠다는 판단이 섰다.


나 역시 방송 일을 정리한 상태였다. 아이들 논술 수업은 어느 지역에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일이었고, 학생 모집 역시 시간이 걸릴 뿐 못할 일은 아니었다. 남편도 말했다. 거기서 직장을 구하면 되지 않겠냐고. 그리고 그 말은 ‘지금의 삶을 유지하자’기보다는 ‘새로운 삶을 만들어보자’에 더 가까웠다.


남편의 취미는 그 자리에 두고, 우리는 그 취미와 가까운 곳에서 살아보기로 했다. 제주를 벗어나 조금 다른 삶의 형태를 살아보는 것. 그렇게 우리는 시골의 도시, 순천으로 이사를 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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