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닥치고써 Feb 29. 2024

왜 글을 쓰나?

이백 일흔여섯 번째 글: 내 배가 부르면 과연 나는 글을 쓸까?

글을 언제 쓰는지를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이상적인 답변이 나오려면 하루 중 규칙적인 시간에 혹은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쓴다,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이것을 실천하는 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궁여지책으로 나올 만한 답변은 언제든, 또 어디에서든 쓴다, 가 되어야 할 터입니다. 오히려 현실적으로는 이 전략이 더 타당하고 행동으로 옮기기에도 수월합니다.


또한 저는 그런 생각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처럼 이렇게 매일 글을 쓰는 행위를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를 말입니다. 사실 저도 현재로선 뭐라고 확언할 수 없을 듯합니다. 다만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면 아마도 글쓰기를 멈출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논리에 있어서 뭔가가 모순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글쓰기를 좋아하고, 세상의 모든 일 중에서 글쓰기를 할 때 가장 행복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 바로 저인데,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면 글쓰기를 관둘지도 모른다고 하니 말입니다.


글쓰기를 생각할 때면 늘 딸려 나오는 낱말들이 있습니다. 외로움, 불만(족), (어쩌면 다소간의) 불행, (넉넉하지 않은) 경제 사정. 난데없이 왜 이런 부정적인 표현을 떠올리냐고요? 삶이 외롭고 불만족스러울 때, 제 삶의 전반에 있어 어느 정도의 불행을 느낄 때, 그리고 경제적으로 그다지 풍족하지 않을 때 저는 글을 더 쓰게 되더라는 걸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젠 낱말들과는 반대의 의미를 가진 것들을 떠올려 볼 차례입니다. 고독, 만족, 행복, 부(富). 지극히 제 개인적인 경험이긴 합니다만, 이렇게 해보면 그 뜻이 보다 더 명확해질 수도 있습니다. 저는 고독을 즐기거나 삶에 대해서 만족을 느끼거나 혹은 삶의 전반에 있어서 행복을 느낀다면 글을 덜 쓸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경제적으로 풍족하면 더더욱 글을 써야 할 이유는 희미해질 것입니다.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말의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육체적인 혹은 정신적인 모든 여건은 부정적인 지표를 가리키고 있는데, 정작 저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에 빠져들게 됩니다. 조금만 더 냉정하게 생각해 볼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과연 제게 글쓰기라는 활동은, 단언한 것처럼 제가 가장 좋아하는 행위가 틀림이 없을까요? 왜 그 좋아하는 글쓰기를, 정작 제가 배가 부른 상황이 오면 더는 글을 쓰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될까요?


글쓰기는 어떤 식으로든 무엇인가에 대한 결핍에서 오는 것입니다. 세상 사는 게, 또 사람의 인생이라는 게 그럴 리는 없을 테지만, 결핍이 없다면 굳이 글을 써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것입니다. 무리한 일반화를 요구하는 게 아닙니다. 다른 분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지금은 진정한 고독의 의미를 느껴본 적이 없고, 삶이 만족스럽다거나 행복하지도 않으며, 부(富)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으니, 이 모든 것들이 혹은 몇 가지라도 충족이 된다면 글을 쓰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제 모습에 대해서 저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요?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매거진의 이전글 열린 방파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