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무리 여행, 비 오는 어느 2월 29일
어차피 밖에 나갈 것도 아닌데 부슬부슬 오는 비가 마음을 바닥으로 툭 떨군다.
두 개의 채 닿지 않은 방파제 앞머리 사이로 찔끔찔끔 바닷물이 들어왔다 나간다. 딱 그만큼만 허락하는 이유가 있겠지. 내 마음의 미진함과는 달리 세상에 차곡차곡 위치한 것들의 균형을 보려고 노력한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꿈꾸고 떠나왔으나 첫 페이지를 읽자마자 부끄러움과 미안함으로 마음속에 거품이 인다. 그다음은 어쩌려는지 떨리는 손으로 넘기기만 하고 읽지는 못했다. 초고는 쓰레기라더니 이런 거구나.
내가 소설을 시작한 건 갑자기 눈앞에서 텍스트가 완전히 사라진 어느 상상 같은 한 순간 때문이었다. 지금 아니면 영영 못쓸 것 같았다.
한 아이의 떨어진 노트 커버를 고쳐주려다 철심에 긁혀 손가락 하나에 깊이 찢어진 상처가 났었다. 가차 없이 뚝뚝 떨어지는 붉은 핏방울에 대한 글을 올리고 그걸 소설의 첫 장면으로 썼다.
과거의 나의 피가 겹쳐지고 타인의 피가 검붉게 나를 앓아눕게 했던 그 순간들이 너무 강렬하게 떠올라서, 20년도 넘게 흐릿한 줄거리만 가지고 있던 글을 시작했다. 100일간 소설을 썼노라는 어느 작가를 귀담아 들었다.
오늘 장편소설의 첫 글을 올린 지 100일째 되는 날이다. 소설은 끝나가고 있다. 후다닥 쓴 글들은 두려운 핵심을 수면 위로 떠올리기 싫었는지 가지치기를 너무 하는 바람에 메시지가 명확하지 않다. 사소한 에피소드들이 막장이진 않지만 평범하진 않다는 건 마음에 든다.
이름 짓는 것이 너무 어렵다. 내가 이토록 상상력 부재였던가. 가끔 적나라한 그대로의 경험에 다시 읽다가 까무러치기 직전에 맞선다. 깨달음으로 잇는 연결성의 부재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고 뜬금없는 감성을 보충하거나 단호히 도려내야 한다. 벌써 내 살점이 뜯겨나가듯 아프다. 초보라서 그렇겠지 한다.
사분의 일 쯤 읽고 나서 마음 정리를 한다. 내 마음의 방파제를 세운다. 일단 들어온 물을 살피고 미련 없이 내보내기를 한다. 틈을 내어 두고 마주 보고 있는 방파제에 큰 교훈을 얻는 날이다.
방파제 왼쪽 끝에는 노란 등대가 서 있다. 사실 너무 작아 잘 보이지 않아 등대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나는 일단 방파제 끝에 뭔가 서 있으면 등대라고 부른다. 그렇게 해두고 빛의 희망을 뽑아다 쓴다. 행운을 걸어 둔다.
덤으로 얻은 29일, 덤으로 사는 24시간, 덤으로 글쓰기, 덤으로 생각하기, 덤으로 행복하기.
무덤덤하지 않고 덤덤한 날이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