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오는 날
이백 일흔일곱 번째 글: 벌써 이만큼 컸네요.
이유는 없습니다. 군에 입대한 아들 녀석이 퍽 자주 집에 오는데도 불구하고, 이번 주는 꼭 와 주었으면 했습니다. 그런데도 이 소심한 아비는, 대놓고 오라는 말은 못 하고 와 주기만을 바란 한 주간을 보냈습니다. 중간중간에 카톡으로 연락을 주고받을 때면 '이번 주엔 오니?'라는 말만 반복했을 뿐입니다. 왕복 7시간에 달하는 강행군을 선뜻 요구하기가 뭣해서지요.
수요일쯤엔가 드디어 오겠다는 문자가 왔습니다. 하늘을 날아갈 듯 기뻤지만 그 기쁜 티를 내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무슨 사나이의 체면 같은 것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닙니다. 올 때마다 너무 좋은 티를 내면, 자칫 그게 매주 집에 오라는 무언의 압력으로 비칠까 싶어서입니다.
3월 4일, 신학년이 시작됩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제 입장에선 본격적인 제자농사(?)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자식농사란 말은 있어도 제자농사란 말은 세상 어디에도 없지요. 평생을 걸쳐 자식을 키우고 가르치는 것이 자식농사라면, 최소한 1년은 가르치고 길러야 하는 게 교육이니 그것 역시 제자농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무튼 제자농사 첫날에 앞서 이번엔 꼭 아들 녀석이 보고 싶었습니다. 얼굴을 한 번 보고 말이라도 몇 마디 주고받았으면 했습니다. 딱히 맛있지는 않더라도 식탁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뭔가를 먹고 싶었습니다.
아마도 10분 내외로 아들 녀석이 집 근처 지하철 역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문득 가수 김연자 씨의 '10분 내로'라는 노래가 생각나네요.
행복이 뭐 별 게 있겠습니까? 10분 내외로 보고 싶은 아들 녀석 보고, 기다리는 동안 이렇게 제가 좋아하는 글을 쓰는 게 행복 아니겠습니까? 늦은 시간이지만, 이 추운 날씨에 혼자가 아니라 둘이 집에 갈 수 있는 그것이 바로 행복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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