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 일흔아홉 번째 글: 글 쓰기 좋은 시간과 장소가 따로 있나요?
사람에겐 징크스라는 게 어느 정도는 존재합니다. 원래 징크스라는 것은 어떤 불운이나 악운을 뜻하는 부정적인 말입니다. 이 징크스는 뚜렷한 인과관계없이 일어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자기가 가진 옷 중에 특정한 색깔의 옷을 입고 나가는 날마다 좋지 않은 일이 발생했다고 가정한다면, 어느 날 무심코 그 색깔의 옷을 입고 나와서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고 하루종일 전전긍긍해하는 게 징크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 징크스라는 말과 반대되는 말은 뭘까요? 특별히 이것이다 싶은 반대말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다만 운동선수가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일종의 루틴과 같은 행위 등이 이 징크스를 극복하려는 노력으로 여겨지긴 합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야구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기 전 배트에 스프레이를 뿌릴 때 네 번씩 뿌리고 나가니까 안타를 치더라, 하는 기억이 각인된다면 그는 앞으로 늘 네 번의 분무질을 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심지어 이런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가 막상 타석에 나가서 안타를 못 쳤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분무질을 세 번만 했기 때문이더라는 식입니다.
이젠 글을 쓰는 우리들에게로 화제를 돌려야 할 차례입니다. 우리에게도 징크스라는 게 분명 존재할 것 같긴 합니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고 개성도 다른 데다 글을 쓰는 방식 또한 다르기 때문입니다.
직접 손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은, 어떤 노트에 혹은 어떤 펜으로 쓰느냐에 따라 글이 더 잘 써지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 누군가는 공공도서관의 한적한 좌석에서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누군가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커피 전문점에서 글을 더 잘 쓰기도 합니다.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으로 글을 쓰는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설마 아이폰이냐 삼성폰이냐를 두고 그런 생각이 들지는 않겠지만, 전자기기를 활용하여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아무래도 글을 쓰는 시간대나 장소에 더 민감해지기 마련입니다. 누군가는 남들이 다 잠들어 있는 꼭두새벽에 일어나 작업을 시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밤늦게 글을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뭉텅이 시간이 나야 글을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누군가는 바쁜 하루를 쪼개어 틈틈이 글을 쓰기도 합니다. 어느 누구 하나 목표가 다른 사람이 없습니다. 다만 접근하는 방식이 다른 뿐이니 누가 더 바람직하다거나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글을 쓰는 데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장소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다만 웬만큼 글을 쓰는 사람들이나 하다못해 기성 작가들 같으면 하나의 루틴처럼 어느 곳에 가면 특히 글이 잘 써지는 곳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긴 합니다. 이럴 때 가장 좋은 것은 '찬밥 더운밥 가리지 않는 성격'이 아닐까 싶습니다. 글이 잘 써지는 장소가 딱 한 군데만 있는 사람은, 그곳에 가지 않으면 글을 쓰지 못하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곳엔 늘 갈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글을 쓸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글은 까다롭게 쓰더라도 글 쓰는 시간과 장소를 선택하는 데에는 까다롭지 않은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언제든 글을 쓸 수 있고, 그 어떤 장소에 있든 글을 쓸 수 있는 것이 가장 좋은 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