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전생이라는 게 있다면 그때도 우린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혹은 미워하기도 했을 겁니다. 사랑은 그렇다고 쳐도 불교에서 말하는 업을 쌓는 행위들 중의 하나가 타인을 미워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단순 도식화하긴 어려워도 미움이 깊어지면 증오가 될 테고, 증오로 점철된 관계가 있다면 우린 이를 일컬어 '원수'라는 말로 지칭할 수 있을 것입니다.
흔히 전생에서 원수지간이었던 사람들이 부부나 부모와 자식의 관계로 다시 만나게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제로섬 게임이라고 하나요? 전생에서 치를 떨 정도로 증오했으니 그 업을 후생에라도 소멸시켜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인생이라는 건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제로섬 게임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이 제로섬 게임도 그리 만만치 않은 과업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기혼자들 가운데 세 쌍 중 한 쌍이 이혼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면, 인생이 과연 제로섬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 말은 곧 업을 소멸한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겠습니다. 게다가 이혼한 사람들이 다시 혼인하는 걸 보면,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업장은 그만큼 큰 것입니다.
최근에 제 주변에 있는 모든 기혼자들에게 다음의 두 가지 질문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환생한다면 지금의 배우자와 다시 결혼하겠느냐는 게 그 하나였고, 나머지 하나는 다시 태어나면 또 결혼을 하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대략 서른 명 정도에게 물어본 듯합니다.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절대 지금의 아내나 남편과는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선 2/3 정도가 한 번 해봤으니 됐다며 다시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고, 나머지 1/3은 다른 사람과 결혼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혹시 이쯤에서 현재의 배우자와 다시 결혼하겠다고 한 그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지 않나요? 그분은 결혼한 지 갓 1년에 접어든 분이었습니다. 좌중에 있던 사람들이 그분의 대답을 듣고 하나 같이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좀 더 살아보면 마음이 바뀔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물론 그분의 생각이 틀렸다는 건 아닙니다. 사람마다 성향과 생각이 다른 데다, 그 두 사람은 흔히 말하는 천생연분일 수도 있으니까요.
좋을 때는 그렇다고 쳐도 기본적으로 원수였던 사람들끼리 만나서 그런지 관계에 한 번 금이 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가 됩니다. 이건 뭐 부부가 아니라 남보다도 못한 관계가 되는 건 일도 아닙니다. 전생에 원수지간으로 만났으니 다음 생에 다시 만나지 않으려면 지금의 업을 소멸해야 하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아득해집니다.
지금의 남편이나 아내를 후생에 다시 만나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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