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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Apr 19. 2024

잘 지냅니다

0677

만화가가 만화가가 된 사연을 만화로 그린 만화.


어느 날 갑자기 15년 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다.


나 자신을 찾고 싶어


한 달 동안 방에 처박혀 만화를 그려본다.


방안 가득 뒹구는 그리다 만 종이뭉치를 보며 중얼거린다.


없구나... 그릴 게...


40년간 살아온 인생을 중년의 시점과 자신의 참신하고 예리한 관점으로 표현하겠다던 장대한 포부는 막상 현실에서는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월간 IKKI 신인상으로 데뷔한 아오노 슌주의 단편 <주마등> 도입부다.

글을 쓸 때의 내 모습이 꼭 만화 속 시즈오 같다.


결의만 있고 게으르고 무엇하나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진짜 열심히 해야 하지 않을까


아직 나의 때가 오지 않은 것은 그저


아직 최선을 다 하지 않았을 뿐


책 말미에 덤으로 지은 시가 절절하다.


너무 자주 넘어져서 무릎이 엉망입니다.
하지만 넘어지는 모습은 나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상한 별명으로 불립니다.
인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정말 친구가 안 생깁니다.
다들 신경 써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벌벌 떨릴 정도로 혼이 납니다.
장래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거울에 모르는 사람이 보입니다.
아마 멋진 녀석인 것 같습니다.

목부터 왼팔까지 저려옵니다.
일시적인 것 같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월세를 제대로 내고 있습니다.

야채도 잘 챙겨 먹습니다.

가능한 한 웃으려고 합니다.

이렇게 컸습니다.

어머니, 절 낳아주셔서 감사해요.



나, 잘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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