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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May 06. 2024

집에서의 글쓰기

가끔 저녁 때면 제 방문이 벌컥 열릴 때가 있습니다.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고 열심히 타이핑을 하던 제가 열린 문을 보노라면 기어이 아내가 한 마디 말을 던집니다.

"지금 뭐 하고 있어?"

"응, 글 써."

이제는 암묵적인 약속 아닌 약속이 되어 버린 지 오래입니다. 속된 말로 혼자 방 안에 틀어박혀 이상한 영상이나 보고 있는 게 아니라면 아내는 더는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문을 닫습니다. 과연 제가 글을 쓰고 있다는 걸 심적으로 얼마만큼의 지지를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특별한 일이 있는 게 아니라면 하던 것 계속하라는 듯 그렇게 물러나곤 합니다.


그렇게 문이 닫히면 저는 곰곰이 생각해 보곤 합니다. 기껏 '글을 쓰고 있다'라고 큰소리치긴 했는데, 제가 그렇게 호언장담할 만큼 뭔가를 쓰고 있는 게 맞긴 한가 싶어서입니다. 뭐, 어느 공모전에 제출할 원고라도 쓰고 있다면, 혹은 그럴 일은 없겠지만 어딘가에서 청탁을 받은 원고라도 쓰고 있다면, 모처럼 만에 목에 힘주어 말한 '글을 쓰고 있다'는 말이 꽤 그럴싸하게 들렸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따지고 보면 할 일이 도처에 널려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무슨 글공부하는 선비처럼 글이나 쓰네, 하는 식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만약 사실이 그렇다고 한다면 혼자 골방에 틀어박혀 글이나 쓰고 있는 제가 얼마나 꼴 보기 싫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할 일이 널려 있다는 게 제 눈에 들어왔다면 경우 없이 글이나 쓰겠다며 방으로 쏙 들어가는 그런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다만 집안일에 대한 아내와 저의 시각 차이는 분명 존재할 것이고, 때로는 눈치 없이 방에 틀어박히는 일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겠습니다만, 가급적이면 몇 번이고 주변을 둘러보고 더는 할 일이 없다고 판단이 될 때면 저는 마치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한 마리 짐승처럼 제 방으로 가곤 합니다.


밖에서 이런저런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게 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이거나 아내와 딸아이가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소리라면 신경을 끄고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행여 그 소리가 어떤 허드렛일을 할 때 들리는 소리라면 좌불안석이 되고 맙니다. 마음이 편할 수가 없습니다. 속된 말로 글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제가 쓰고 있는 글이 돈이 될 테니, 꿋꿋이 버티고 앉아 있을 수 있겠으나, 취미 이상 혹은 그 이하도 아닌 고작 제가 좋아서 하는 '글쓰기'를 고집하는 건 현명한 태도라고 보기가 힘이 듭니다.


그래서일까요, 모두가 잠든 밤에 글 쓰기를 저는 좋아합니다. 물론 저 역시 피곤한 건 사실입니다. 다음 날이 평일이라면 출근해야 하니 더 깊은 시간까지 깨어 있을 수도 없습니다. 그 짧은 시간을 틈타 저는 글을 써야 합니다. 만약 온 가족이 그 시간까지 잠에 들지 않으면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시 방석에 앉아 글을 쓰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야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좋은 글이 나올 리가 없는 것이겠습니다. 어쩌면 써놓고도 저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그런 두서없는 글이 나오고야 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집에서 글을 쓰는 걸 그다지 즐기지 않습니다. 지금처럼 노트북을 챙겨 나와 커피 전문점에라도 가서 글을 쓰겠다면 아내는, 글 쓰는 걸 방해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절간처럼 조용한 집을 놔두고 굳이 그렇게 밖에 나가서 돈까지 써 가며 글을 써야겠느냐는 말을 하곤 합니다. 물론 이럴 때면 제가 쓰는 글은 졸지에 '그 대단한 글'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써야 합니다.


글을 쓰겠다는 사람이, 시간과 장소 다 가려가면서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은 경험상으로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긴 합니다만, 언제쯤이면 집에서 편하게 글을 써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합니다. 집에서 글을 쓴다는 것이 이렇게도 어려운 것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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