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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May 07. 2024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그들

018.

나는 그런 결박을 풀어버리려 애썼다. 내 몸에 마음을 맡기자. 유목의 땅에서 모든 인간은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는 것, 이동하는 목숨들은 나그네요 주인은 오직 대지일 뿐이라는 것, 그래서 그곳의 일들(자연의 질서)을 거역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었던 것이다. 몽골인들은 그랬다. 해마다 무서운 봄바람이 불어 사람이나 가축을 말아 올려 죽여도 그들 의식 속에 저항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 본 책, 22~24쪽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국민성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민족 정서라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그런 의식이나 사고의 수준이 그 나라의 국토의 크기에 비례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명백히 우리네 조상들은 안 그랬다고 하지만, 그건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어쩌면 지금의 이 편협한 인식의 수준이 유전 인자로 각인되어 내려오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면적으로는 세계 18위, 한반도의 7배가 넘는다는 몽골. 남한과 견주어 봐 무려 15배에 달하는 넓은 국토를 아주 오래전부터 종횡무진 말을 타고 달렸기 때문일까요? 그들의 넉넉한 품은, 땅의 크기에 못지않게 넓은 데가 있습니다. 오죽하면 해마다 무서운 봄바람이 불어 사람이나 가축을 말아 올려 죽여도 저항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고 할까요? 그건 어쩌면 체념이 아니라 대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것인지도 모릅다. 단적인 예로, 입산이 아닌 등산이라는 말을 쓰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산은 오르는 게 아니라 드는 게 맞다는 말이 불현듯 떠오르는 건 왜일까요?


몽골에서는 자연이 주는 아주 큰 재앙있습니다. 몽골말로 조드라고 지칭하는 이것은 여름의 가뭄 뒤에 찾아오는 겨울의 극심한 가뭄과 혹한의 재앙입니다. 혹독한 추위와 폭설로 인해 가축 폐사를 유발하는 기상이변이기도 하고요. 조드가 오면 기온은 영하 30~40도 이하로, 혹은 심한 경우에는 영하 50도 아래로 떨어진다고 합니다. 8~9년에 한 번씩 찾아왔던 조드는 그 주기가 짧아지면서 최근에는 1~2년마다 발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조드에 관해 궁금하신 분들은 본 수필의 저자인 소설가 김형수 씨가 쓴 소설 '조드'를 읽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조드의 피해가 얼마나 컸으면 3월 중순 경 우리나라의 외교부에서는 몽골에 조드 피해 대응을 위해 20만 달러(한화 약 2억 6천만 원)의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기까지 했습니다. 올해 기준으로 전 국토의 약 80%에 이르는 지역이 조드 또는 조드 위험 지역으로 분류되었고, 폐사한 가축 수만 해도 309만 마리에 이른다고 합니다.


말난김에 얘기하게 되었으나, 저는 지금 조드의 실태와 그 피해상에 대해 말하려는 건 아닙니다.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위험한 상황에 그들은 처해 있습니다. 용케 조드의 직격탄을 비껴갔다고 해도 도처엔 늑대들까지 그들을 노리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도 그들은 불평이나 불만 따위를 비치는 일이 없습니다.


물론 저는 몽골에 가본 적도 없고, 아는 몽골인도 없습니다. 두 권으로 된 '조드'를 읽었을 뿐입니다. 대자연의 엄청난 힘 앞에 그들은 결코 도전하지 않습니다. 자연을 상대로 이겨 먹으려 들지 않습니다.  마치 그들은 자신들이 반드시 겪어야 하는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조드를 받아들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 그들의 마음가짐이 돋보였습니다. 어쩌면 뭔가 두려워하는 대상이 있다는 건 그만큼 순리에 어긋나지 않게 살아가는 힘이 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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