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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잘하려면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거짓말쟁이는 진실에 관심이 있으며 나름의 방법으로 그 진실을 존중하지만, 개소리쟁이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개소리는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
나는 그런 관점을 소설 쓰기에도 적용해 본다. 진실을 존중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쓰면, 정성스러운 거짓말이어야 할 소설이 그저 개소리가 되어버린다고. 그리고 소설에서 진실을 존중하는 강력한 방법 중 하나가 사실성, 혹은 개연성, 핍진성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본다. ☞ 본 책, 76쪽
앞에서 인용한 글귀에서 저자는 소설을 쓰는 사람은, 거짓말쟁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거짓말쟁이는 그냥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사람이어야 합니다. 단순히 진실을 덮기 위해서, 뭔가를 감추기 위해서 습관적으로 혹은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이 아니라, 진실에 관심이 있고, 그 진실을 존중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성을 갖추기 위해 불가피하게 거짓말을 해야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만약 그가 거짓말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고자 한다면, 그는 문학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논픽션, 즉 '르포르타주'를 지향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완벽하면서도 흠 없는 거짓말을 펼치기 위해 저자는 문학에서의 세 가지 특징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바로 사실성과 개연성과 핍진성 등입니다. 이 낱말들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래도 사전적인 정의를 간단하게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실성: 글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나 내용이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것을 의미
개연성: 절대적으로 확실하지는 않으나 아마 그럴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뜻하는데, 실제로 일어날 법한 일을 다루는 것으로 문학의 보편성을 의미
핍진성: 문학 작품에서 텍스트에 대해 신뢰할 만하고 개연성이 있다고 독자에게 납득시키는 정도를 의미
전 사실 개인적으로 개연성과 핍진성의 그 의미가 늘 혼동되곤 했습니다. 내친김에 몇 군데 찾아보니, 이야기 속 인과관계의 올바른 정도를 개연성이라고 하고, 작품 세계나 배경이나 설정 등에서 나올 만한 이야기인가를 의미하는 것이 바로 핍진성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이 핍진성이라는 걸 조금 더 확장해서 생각해 본다면, 작가가 자신이 만든 작품 속 세계의 규칙이나 법칙을 어기면서 스토리를 서술했을 때 핍진성을 상실했다고 합니다.
문학가는, 그중에서도 특히 소설가는 본 책의 저자가 말한 것처럼 누구보다도 거짓말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다소 확실성은 떨어지더라도 누가 생각해도 분명 그러할 것이라며 수긍이 가는 거짓말을 해야 하고, 소설가가 설정한 작품 세계나 배경 등이 마치 이 세계에서도 통용되는 법칙인 양 대중을 감쪽같이 속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어야 본 책의 저자가 직시한 것처럼, 거짓말과 개소리 사이에서 완벽한 자신의 입장을 지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