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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Jun 09. 2024

나는 누구일까요?

021.

삶에 정답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습관적으로 정답을 찾았다. 정답이 있는 세계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로스쿨까지 시험 다음에 또 다른 시험을 쳤다. 시험지 속 세상은 명확했다. 시인의 의도도, 정의도, 삶의 의미도 오지선다 속에 있었다. 하나는 옳고 나머지 넷은 틀렸다. 정답을 맞혀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맞는 답을 찾아가며 나아간 끝에 정답이 없는 삶과 맞닥뜨리자 나의 작은 세계는 조용한 혼란에 빠졌다. 깨어지지 않았지만 금이 간 도자기처럼 무언가가 미묘하게 잘못된 것 같았다. 답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부터 내가 찾아야 할 것은 정확한 답이 아니라 정확한 질문이었다. 한 인간으로, 엄마로, 변호사라는 직업인으로, 사회의 구성원으로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스스로 묻고 답해야 했다. ☞ 본 책, 8~9쪽

그러면 안 될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자꾸만 타인의 삶에 눈길이 갑니다. 그들은 어떻게 살아왔고,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들이 애초에 가진 목표는 무엇이었고, 지금 현재 얼마만큼 이루었으며, 미처 다 이루지 못한 것들은 어떤 계획을 갖고 이루려 하는지 들여다보려 합니다. 좋게 말하면 저뿐만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따뜻한 관심을 가졌다고 볼 수 있겠으나, 그건 어쩌면 핑계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그만큼 제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에 대해 자신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쉽게 얘기해서, 타인의 삶을 통해 저는 잘 살아가고 있는지 굳이 확인하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남도 아니고, 제 자신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알아야 하는 제가 그처럼 확신이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본 책의 저자가 말하고 있듯 삶에는 정답이 없다고 보는 게 옳을 것 같습니다. 타인에게 해악을 끼치지만 않는다면, 또 자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삶이든 그 자체로서 정답에 가까운 모범답안이 아닐까요? 성장과정에서 익숙해졌던 오지선다-제가 교육받던 시절에는 주로 사지선다였습니다만- 속에서의 해답 찾기, 오직 하나만 옳고 나머지는 모두 틀린 답이라는 그 문제 해결 과정에 익숙해져 온 병폐 때문입니다. 그 어떤 삶도 정답일 수가 없습니다. 가령 자신이 옳다면 세상의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가 틀린 삶을 사는 사람들일 테고, 자신이 믿는 신념 체계나 신에 대한 믿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타인은 사이비가 되고 그들이 믿는 신은 잡신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틀에서 벗어나면 맨 먼저 정을 맞는 사회에 우리는 살아왔습니다. 또 오직 정답 찾기에만 길들여져 살아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자의 말처럼 시험이라는 틀을 벗어나니, 즉 더는 정답 찾기에 골몰하지 않아도 된다 싶으니 우리가 그동안 찾아왔던 그래서 조금의 의심도 없이 맹신했던 정답들이 정답이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것만 알고 있으면 세상의 문제 따위는 죄다 해결될 것 같았지만, 막상 사회인으로 살아보니 그 어느 것도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그제야 우리는 다시 정답 찾기에 찾아 나섭니다.


그런데 그토록 잘 찾아지던 정답들이 이젠 쉽게 우리 눈에 띄지 않습니다. 이것이 저것 같고, 저것이 이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손바닥 뒤집듯 그게 그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때가 되어서야 우린 느낍니다. 가장 중요한 인생의 순간들을, 문제에 대한 정답을 찾으며 살면 올바른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잘못된 신념으로 버텨왔다고 말입니다.


저자는 '이제부터 내가 찾아야 할 것은 정확한 답이 아니라 정확한 질문'이라고 말합니다. 이 '질문'은 이미 정해진 것이 아니라 각자가 만들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찾는다고 했으니 그건 분명 어딘가에 있다는 말일 테고, 그렇게 해서 찾은 질문을 '나의 방식'으로 각색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삶의 방향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나는 누구인가?


제가 평생 안고 가야 할 저만의 질문입니다. 물론 제가 독창적으로 찾은 질문은 아닙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정답을 찾으려 했던 바로 그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 제가 명확하게 답변을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저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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