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월 전까지만 해도 아주 조금씩 글을 쓰긴 했습니다. 노트북 바탕화면에 폴더를 만들어 제가 쓴 글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었다고나 할까요? 사실 그때만 하더라도 지금과 같이 이 정도로 죽기 살기를 각오하기라도 한 듯 글을 쓰진 않았습니다. 어디까지나 그저 소일거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특출 난 재능은 없어도 제 생각을 글로 써보고 싶다,라는 단순한 생각 정도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던 작년 6월 브런치스토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신청했는데, 단번에 이곳에 둥지를 트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저의 글쓰기는 사실 브런치스토리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2023년 6월 9일, 브런치스토리에 입성했으니 대략 1년 하고도 8일 정도가 지났습니다. 날 수로는 374일쯤이네요. 이 글을 쓰기 전에 잠시 브런치스토리에 가서 제가 그동안 얼마나 글을 썼는지 확인해 봤습니다.
1,372편을 썼더군요. 잠시 계산기 두드려 보고 오겠습니다. 하루에 3.67편의 글을 썼습니다. 요즘은 대체로 한 편 당 A4 용지 한 장 정도에 맞추지만, 한때는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고 나오는 대로 썼습니다. 정확한 추산은 어려우나 A4 용지로 환산했을 때 최소 1,800~2,000장은 썼던 것 같습니다. 이것만 해도 하루에 A4 용지로 4~5장씩의 글을 쓴 셈입니다. 이 단순한 숫자들을 보고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뭐, 1년 동안 1300편이 넘는 글을 썼다고?
하루에 A4 용지로 4~5장의 글을 썼다고?
우와, 그 정도 썼다면 글 엄청나게 잘 쓰겠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글쓰기 강좌나 교육을 받은 경험 없이 무작정 뛰어든 글쓰기의 세계였습니다. 적지 않은 소설을 쓴 지금까지도 플롯이 무엇인지조차도 모르는, 그야말로 문학에는 일자무식인 저입니다. 시점에 따른 서술, 배경 묘사, 인물 선정, 갈등 설정 등 어느 것 하나 아는 것 없이 뛰어들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일단 무작정 쓰고 봤습니다. 쓰면서 시점을 이해하고 인물을 선정했으며, 저 나름 구상한 방향으로 갈등을 설정해 나갔습니다. 솔직히 그렇게 하니 어느 정도는 해결이 되더군요. 별다른 방법이 없었으니까요. 물론 그러니 보시다시피 아직도 제 글은 요 모양 요 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는 다행스럽게도 하등의 조바심이라고는 없습니다. 그걸 굳이 경지라는 고상한 말을 끌어 쓰려니 좀 뭣하지만, 저의 글쓰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좋아서 혹은 미쳐서 시작한 것입니다. 하긴 50대 중반으로 치닫고 있는 제가 무관(문학상 수상 경력 없음, 등단 못함)이면 어떻고, 하다못해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썼을 때 라이킷이나 댓글이 달리지 않으면 좀 어떻습니까? 중요한 건 제가 한 편의 글을 썼다는 것일 테니까요.
그래서 지금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왜 그렇게 기를 써가면서까지 제가 글을 쓰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저는 조금은 특이하게 지금의 저와는 정반대의 상황을 가정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굳이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제가 글쓰기에 아무리 미쳐 있다고 해도 다음과 같은 상황이 된다면 더는 글쓰기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편의상 '저는 이렇고 저러니 글을 쓰지 않습니다'라는 식으로 글을 써보겠습니다.
사람들은 저에게 왜 글을 쓰지 않냐고 묻습니다. 글쓰기가 얼마나 좋은 건지 모르냐고 핏대를 올려가며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더러 몇몇 사람들은 사이비 종교를 전도하듯 밀어붙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전 대략 다음과 같은 이유로 글을 쓸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하곤 합니다.
첫째로, 저는 결혼 생활에 매우 만족합니다. 게다가 경제적으로 꽤 풍족하게 살고 있습니다. 단지 가지 않는다 뿐이지 해외여행쯤은 언제든 갈 형편이 되고, 좋은 아파트와 좋은 차를 비롯해 어쩌면 최상의 삶을 누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돈이 있다고 해서 없던 사랑이 생겨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해도, 있던 사랑도 돈이 없으면 그 사랑은 막을 내리기 마련입니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살고 있으니 저의 집은 늘 사랑이 피어납니다. 저만을 바라보는 아내가 있고 언제 어디에서든 그 사랑을 느낄 수 있어서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그저 행복할 따름입니다. 아내는 다시 태어나도 저와 결혼할 거라고 말합니다. 그건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둘의 사이가 워낙 좋아서 그런지 사랑으로 낳은 두 아이도 제게 행복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제가 어찌 이들 세 사람을 제 시야에서 떼놓을 수 있을까요?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세 사람만 바라보는 데에도 하루 24시간이 모자란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전 글을 쓰지 않습니다. 아니 아무리 더 많은 시간이 주어져도 저는 글을 쓸 생각은 없습니다. 차라리 저는 그 시간에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행복을 느끼며 살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둘째로 저는 초등학교에서 3학년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물론 학부모들에게서도 존중을 받고, 동료교사들로부터도 나이에 걸맞은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제가 어딜 가서 이렇게 좋은 아이들과 학부모, 그리고 동료교사들을 만날 수 있을까요? 게다가 관리자들도 저를 많이 신임하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학교 가는 제 마음가짐이 어찌 신명 나지 않을까요? 조금의 시간이라도 난다면 저는 학교 생활에 더 전력투구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합니다. 설령 제가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언젠가 든다고 해도 도저히 글을 쓸 수 없는 이유입니다.
셋째, 제 주변엔 지인에서부터 죽마고우라고 할 만한 친구들이 몇 있습니다. 어딜 가나 제 얘기를 들어줄 사람들이 도처에 널렸고, 저와의 만남과 대화 시간을 소중히 여길 줄 압니다. 그런 관계이다 보니 친구나 저는 서로를 위해 죽는시늉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관계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루 24시간은 그런 친구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모자라는 시간입니다. 그런 제가 어떻게 글을 쓸 수 있겠습니까?
마지막으로 그 어떤 일에서든 할 말이 너무 많은 저는, 주변의 사람들과 항상 대화를 나누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언제든 어디에서든 저와 대화를 나누는 걸 주저하지 않고, 기꺼이 저의 말을 들어주곤 합니다. 그들은 저와 얘기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 마음속에서 어떤 말이 생각날 때 미처 담아 둘 필요도 없이 그때그때 밖으로 표출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제가 굳이 그 고리타분한 글을 써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솔직히 다른 건 모르겠습니다. 부족함이 전혀 없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만약에 제가 그 정도에 가까울 만큼 풍요롭게 살고 있다면, 분명 저는 글을 쓰지 않으며 살아갈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뭐가 답답해서 글을 써야 할까요? 사실 어떤 면에서든 결핍된 부분이 있으니 사람들은 글을 쓰는 겁니다. 거의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그 사람의 글은 누구의 마음도 울리지 못할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자, 이제 그렇다면 가장 확실한 해답이 나왔습니다. 제가 기를 써가면서까지 굳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말입니다. 전 행복하지 않아서, 직장에서 그다지 보람을 느끼지 못해서, 외로워서 그리고 결정적으로 듣는 사람은 혹은 들어줄 사람은 없지만 제가 너무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기를 써가면서 글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이 모든 부족함이 어지간히 채워지는 날 아마도 그날은 제가 제 손에서 붓을 놓는 날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