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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Jun 22. 2024

소설을 쓰다가 잠시

소설을 쓰다가 잠시 멈췄습니다. 밖에서 저녁을 먹자고 아들이 불렀습니다. 이럴 때에는 사실 필(feel)을 받았고 말고를 떠나 무조건 튀어 나가야 합니다. 아무리 멋진 표현, 그럴싸한 문장이 떠올랐어도 자리를 뭉개고 있으면, 되돌아오는 건 싸늘한 시선뿐입니다.


뭘 그리 대단한 글 쓴다고…….


좋든 싫든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전업작가가 아닌 이상 글을 쓰기 위해 잠시 후 밥을 먹겠다고 말하는 건 확실히 득보다 실이 더 많기 마련입니다. 물론 글부터 먼저 쓰고 이따가 밥을 먹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차려주길 원하는 건 아닙니다. 제가 제 손으로 먹는다고 해도 그 '대단한 글'을 쓴다는 이유로 비난 아닌 비난을 받아야 합니다. 한 번에 차려서 먹는 게 밥이지 두 번 세 번 왜 그렇게 밥상을 늘어놓아야 하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기 때문이겠습니다.


가족들은 저마다 이야기를 하고 더러는 TV를 봐가며 밥을 먹습니다. 말 그대로 즐거운 저녁 식사 시간입니다. 그러나 저는 조금도 즐겁지 않습니다. 글을 쓰다 중간에 튀어나온 저는 온통 소설에 대한 생각뿐입니다. 이럴 때에는 차라리 식구들이 제게 말을 걸어주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런저런 말들에 대꾸를 하다 보면 기껏 생각난 것을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밥을 다 먹고는 바로 설거지를 해야 합니다. 저 나름의 가사 분담의 제1원칙, 하늘이 두 쪽 나는 한이 있어도 설거지는 제가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그나마 제가 생각한 가사 분담의 원칙이기도 하고, 그나마 제가 그렇게 설거지라도 하고 들어와야 글을 쓴다며 방에 틀어박혀 있어도 마음이 덜 무겁기 때문입니다.


한창 필을 받아 자판기를 두드리고 있는데, 밖에서 또 아내가 부릅니다. 11시 조금 넘으면 문을 닫는 동네마트에 얼른 가서 양파, 대파, 팽이버섯 따위를 사 오라고 합니다. 버젓이 TV를 보고 있는 아내도 있고, 아들도 있지만, 이미 그 부탁을 받은 이상 '나는 지금 글을 써야 하니' 다른 사람이 대신 가면 안 되겠느냐는 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영화평론가는 어떤 자세로 영화를 보든 심지어 맥주 한 캔과 주전부리거리를 잔뜩 갖다 놓고 영화를 보더라도 어쩌면 비난받을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가 보는 영화 한 편은 또 다른 수입을 창출하는 수단이 되기 마련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영화는 일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이란 얘기입니다. 그런 점에서 생각해 본다면 영화평론가가 아닌 이상 집에서 편히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은 가족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 수 있습니다. 아무리 재미있는 영화라고 해도 그 영화는 사실상 지금 당장 봐야 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또, 축구 선수가 그라운드에서 땀을 흘려가며 축구에 매진하는 것은 자신의 삶에 충실하는 것이 되는 동시에 또 다른 수입을 창출하는 수단이 됩니다. 반면에 휴일의 이른 아침에 조기축구회에 가서 땀을 흘려가며 축구에 몰입하는 것은 지금 꼭 하지 않아도 되는 일로 간주되기 십상입니다. 이번 주 한 번쯤은 빠져도 무방한 일, 즉 그만큼 쓸데없는 일로 치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찬가지의 논리로 작가지망생의 글쓰기는 어쩌면 가족들에겐 쓸데없는 짓으로 간주될 우려가 큽니다. 얼마나 시간이 남아돌면 저러고 있느냐는 따가운 시선을 한 몸에 받아야 되고, 가령 밀린 집안일을 내팽개칠 만큼 그게 그렇게 유의미한 일이냐는 비난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처럼 양파와 대파와 팽이버섯 등을 양손에 들고 집으로 가는 길에서도 저는 오직 쓰다가 남겨놓은 소설 생각뿐입니다.


과연 저는 이 소설을 다 쓸 수 있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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