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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Jul 07. 2024

손으로 말을 하는 사람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야 할 때가 된 모양입니다. 대개 손님이 이 매장에 들어오면 음료가 나오기 전까지는 1층에 있다가도 음료가 나오면 2층으로 가기 마련인데, 어느 한 테이블의 손님은 그대로 1층에 눌러앉아 버립니다. 공교롭게도 하필이면 제가 앉은 옆 자리입니다. 사실 그들이 어디에 앉든 제가 상관할 일은 아닙니다. 다만 매장을 전세라도 낸 듯 주변은 아랑곳하지 않고 소란스럽게 하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남자 둘, 여자 한 사람으로 구성된 사람들입니다. 세 사람 중 남녀 한 쌍은 부부인 듯하고, 나머지 한 사람은 남자분의 친구인 모양입니다. 아무리 허물없는 사이라고 해도 그렇지 그들 중의 한 남자의  입에선 말끝마다 십 원짜리 욕이 튑니다. 말이라는 게 말하는 이의 얼굴이란 걸 모르는 걸까요? 얼핏 봐도 저보다도 댓 살은 많아 보이는 사람들인데도 그들은 누가 보건 말건 간에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습니다.


몇 마디 건너 '씨팔'이 등장하고, 많은 부사어들이 '좆'으로 대체됩니다. 문득 말하는 사람이야 그렇다고 쳐도 이렇게 공개적인 장소에서 그 어느 누구도 제지함이 없이 저 험한 말을 다 듣고 있는 나머지 둘은 어떤 사람들일까 싶었습니다. 결국 같은 수준의 사람이란 얘기가 되겠습니다. 이건 제가 그들보다 수준이 높다는 따위의 말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도대체 사회인이 덜 된 듯한 모습을 보이는 저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갈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나 할까요? 저도 나이가 들어가는 사람이지만 저러니 나이 든 사람을 제가 싫어하는 것입니다. '내 돈 주고 내가 이곳에 와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고 있는데 니들이 웬 상관이냐'는 듯한 안하무인의 태도를 일관하는 이들이 유독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 중에 많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고 있으려니 집중이 되지 않습니다. 텍스트들 사이사이로 욕설이 배어 들려 합니다. 글을 쓰려고 접속했다가 몇 줄 쓰지도 못한 채 노트북을 덮어야 했습니다. 가만히 있다가는 남자가 내뱉는 그 무수한 욕들을 고스란히 옮겨야 할 판입니다.


박수칠 때 떠나라고 했던가요? 박수가 아닌 욕이 쏟아지고 있는 지금 전 주섬주섬 노트북을 가방에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그들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로 저 역시 외마디 욕을 내뱉고는 파스쿠찌를 나섭니다.


말은 한 번 하고 나면 결코 주워 담을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한 말이 상대방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 말이라면 그의 기억 속에서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요.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워 담을 수 없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 생각해 보면 말보다 오히려 글이 더한 게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극단적인 경우에 말은, 말한 이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잡아뗄 수도 있겠지만, 글은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입에 걸레라도 물고 있는 듯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뱉는 저 남자를 보면서 오늘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알게 됩니다. 말하는 걸 조심해야 하듯 글을 쓸 때에도 조심해야 한다는 걸 말입니다.


저는 말하는 사람입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사람들과 말하는 빈도가 줄어들고 있지만, 틈만 나면 제 속의 것들을 말하고 싶어 하는 사람입니다. 듣는 사람이 있든 없든 전 말하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에서든 한 번 말해야겠다고 생각한 것들은 어떤 형태로든 말하고 마는 사람입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저렇게 떠들고 있는 저 남자처럼 입으로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겠습니다.


손으로 끊임없이 말하고 있는 저입니다. 입으로 말할 때보다 더 조심해야 함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보면 저 무례한 남자분이 제게 하나의 가르침을 준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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