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닥치고써 Jul 08. 2024

어떻게 이런 표현이…….

33.

1광년은 빛이 365.25일을 날아가는 거리다. 광년은 거리와 시간을 동시에 내포한다는 점에서 재미있는 개념이다. 그럼, 갈매기가 1년을 나는 거리는 1 갈매기년, 사람이 사람을 향해 1년간 가는 거리는 1 인년일까. 20년 넘게 누군가를 향해 열심히 다가가고 있지만, 좀처럼 닿을 수 없다. 어떤 1 인년은 달팽이보다 더 느리다. ☞ 본 책, 40쪽


책을 읽다가 무릎을 탁 치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이렇게도 절묘한 표현이 가능할까요? 1광년이란 말은 사전에도 있는 말이고, 우주에 관해 얘기할 때 통상적으로 쓰는 용어라서 별 느낌 없이 받아들였는데, 난데없이 1 갈매기년에 1 인년이라니요? 그게 몇 km를 뜻하느냐, 혹은 얼마의 거리를 이동했느냐 하는 건 조금도 중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갈매기가 1년을 날아갔다는 것이, 사람이 누군가를 향해 1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몸과 마음을 움직였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겠습니다.


무심코 이 대목을 읽다가 그저 말이 되네, 하는 정도에서 그칠 순 없었습니다. 어떤 말로도 그 느낌을 표현할 길이 없기도 했습니다. 현직 법조인이라는 저자의 이 사유가 그저 놀라웠을 뿐입니다. 또 한 번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에는 참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많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저자의 말처럼 저 역시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 나름으로는 노력한다고 하지만, 좀처럼 그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 그 어떤 이들과의 관계에서 제가 움직인 0.5 인년은 왜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왔으면서도 어쩌면 단 한 걸음도 가까워지지 않는 제 아내에게 제가 움직였던 저의 23 인년은 과연 헛된 걸음이었을까, 하고 말입니다.


1광년: 9,460,000,000,000km
1 갈매기년: 3,013,440km
1 인년: ?
매거진의 이전글 시 같은 수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