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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Jul 14. 2024

현대판 한량

2024년 7월 14일 일요일, 비


파스쿠찌에서 한가롭게 글을 쓰고 있다. 왜 이러고 있는지 한 번 자문해 봤다. 하던 짓이, 할 줄 아는 일이 이것밖에 없다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그럴싸한 대답이었다. 뭐, 그런 식이겠다. 골프를 칠 줄 아는 사람은 실내 연습장이나 필드에 나가서 골프를 칠 테고, 바둑을 둘 줄 아는 사람은 골방에 틀어박혀 인터넷상의 누군가와 대국을 즐기거나 기원에 나가서 상대를 물색한다.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강으로, 호수로, 그리고 바다로 나가 낚싯대를 드리운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더니, 어딜 가서 글쓰기를 배운 건 아니라고 해도 늦게 길이 트고 만 이 짓을 좀처럼 멈출 수가 없다.


정말 웃기는 건 그 어느 누구도 내게 글을 쓰라고 종용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마치 누군가가 그럴싸한 스토리로 대박을 치고 나니 너 나 할 것 없이 글을 쓰겠다고 뛰어든 꼴이라고나 할까? 물론 내게 그런 거창한 명분 따위는 없다. 그냥 혼자서 벽에 대고 중얼중얼거리고 있을 뿐이다. 아니 스마트폰 액정을 향해, 커서만 깜박거리고 있는 노트북 화면에 대고 하소연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가 내 얘기를 듣건 말건 간에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기어이 하고 말겠다는 식이다.


게다가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가 내 글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그저 나만 읽고 말 글을 이리도 장황하게 쓰고 있는 것이다. 한두 편도 아니고 그 많은 글들을 말이다. 솔직히 냉정하게 판단해 보면 이러고 있는 건 보면 거의 병적인 증상에 가깝게 느껴질 정도이다. 만약 이것이 병이라면 고쳐야 하고 그러지 않아야 한다는 뜻일 텐데, 과연 이게 병인지도 구분이 가지 않는다. 속 편하게 생각해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 문제가 되겠느냐는 생각도 드는 게 사실이다.


아마도 오래전 한량들은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나가 술잔을 기울이며 거창하게 시조 한 수를 읊었을 테다. 술을 따라주는 기생을 옆에 끼고 말이다. 좋은 시절에 태어난 그들은 어쩌면 호의호식하며 세상 걱정 없이 그들이 하고 싶은 행동을 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고, 그 일은 분명 자신의 신분을 유지하는 하나의 수단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를 잘 만난 것도 아니고, 떵떵거릴 만한 직업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닌 내가 이렇게 한량이나 할 법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왜일까?


오늘도 나는 현대판 한량이 되어 배부르게 글이나 쓰고 있다. 누군가는 이 시간에도 피땀 흘려가며 일을 하고, 또 어떤 누군가는 몇 푼 안 되는 돈에 자존심을 팔거나 인격적인 모독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를 이 시간에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참 대책 없는 한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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