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작이 Sep 22. 2024

많이 쓰면 이기지 않을까요?

처음 글을 쓸 때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이게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 생각하다가 첫 줄도 못 쓰고 끝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수업 시간마다 강조합니다. 마구 쓰면 된다고, 처음 떠오르는 것을 붙잡고 써 내려가면 된다고. 글쓰기를 잘하는 지름길은 따로 없습니다. '글쓰기'를 떠올리는 순간, 여러분이 함께 떠올려야 하는 문장은 이것입니다.
"마구 쓰다 보면 마구 잘 써지는 날이 온다!"
머릿속에 있는 검열자를 잠재워야 합니다. 이건 되고, 저건 안 되고, 이렇게 하면 되고, 저렇게 하면 안 되고 하다 보면 날이 샌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글도 괜찮은지, 써도 되는지 물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마구 쓸 수 있는 사람이 결국 잘 쓰게 되어 있습니다. ☞ 윤슬, 『내 얘기도 책이 될 수 있을까?』, 38~39쪽


고2에서 고3으로 접어들던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이 납니다. 당시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체대 태권도학과에 진학하겠다고 깔짝대던 때였습니다. 어느 날 수련을 마치고 집에 가서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무예를 익히던 중이었으니 무술 영화에 손길이 갔습니다. 제가 본 영화는 성룡이 출연했던 영화였습니다.

악당들과 싸우는 과정에서 눈이 휘둥그레지게 만든 동작이 나왔습니다. 정확한 발차기 동작 이름은 기억이 안 나는데,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아마도 '540도 공중회전 뒤돌려차기'쯤이 될 것 같습니다. 비디오를 몇 번이나 되감으면서 그 동작을 봤습니다. 동작의 그 선이 너무도 황홀해 꼭 배우고 싶었습니다. 아니 배우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혼자 그 동작을 마스터하고 싶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조금만 연습하면 저도 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다음 날 체육관에 가서 사범님께 말씀을 드렸다가 된통 혼이 났습니다. 영화 속의 동작은 실용적인 동작이 아니라 그저 설정일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냥 가르쳐 주는 기본적인 것만 연습하라고 하시더군요. 엄한 사범님의 말씀을 어길 수 없어서 가르쳐 주신 기본기 연습에 시간을 들였습니다. 모든 수련이 끝난 뒤에 집에 가기 전 30분 동안 문제의 그 발차기를 연습했습니다. 하라는 걸 했으니 설마 혼이야 내실까,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혈기왕성한 나이라도 그게 될 리가 없었습니다. 540도라면 점프한 상태에서 몸이 한 바퀴 반이나 돌아야 했으니 어떻게든 동작을 흉내 내더라도 착지할 때는 어김없이 넘어지고 맙니다. 앞으로 넘어져서 턱을 부딪치고, 뒤로 넘어져 머리를 찧고, 옆으로 넘어져 어깨를 부딪치기도 했습니다. 온몸에 멍이 들고, 아프다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한 달 정도를 그렇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날도 넘어졌다가 일어나서 다시 자세를 잡으려는데 사범님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새끼, 고집 더럽게 씨네. 여 와봐."

너한테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며 사범님은 그 비기를 제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물론 결정적으로 동작을 완성할 수 있었던  사범님의 가르침 덕분이었지만, 전 지금도 한 달 동안 무수히 넘어지면서 연습했던 그 시간들이 없었다면, 그 동작을 끝내 터득하지 못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문득 글쓰기도 태권도 동작 익히기와 이치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위의 책의 저자가 말한 것처럼 이것저것 재지 않고 마구 글을 쓰는 것이, 제가 무턱대고 그 고난도의 발차기 연습을 반복적으로 한 것과 같은 맥락이 되는 것입니다.


1+1+1+1+1=?

여기에서 수학적인 계산을 하나 떠올려 봅니다. 뭐, 이 정도 식이라면 암산으로 단번에 '5'라는 답이 도출되겠지만, 수학적으로 올바른 계산 절차는 다음과 같이 될 것입니다.


1+1+1+1+1=2+1+1+1=3+1+1=4+1=5

앞에서부터 하나하나씩 계산해 나가면 틀릴 일이 없습니다. 굳이 중간에서부터, 혹은 뒤에서부터, 또는 왔다 갔다 하며 계산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결국엔 글쓰기로 말하자면, 저자가 말한 '처음 떠오르는 것을 붙잡고' 글을 쓰는 방식이 되는 것입니다. 당연히 맨 앞의 '1'이 맨 처음으로 떠오른 최초의 문장이 되는 것이고, 그 뒤에 문장을 하나씩 하나씩 더해가는 것 그것이 곧 글쓰기이니까요.


간혹 글을 쓸 때면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아지곤 합니다. 이것도 글이 될까,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읽어도 별로인데 이런 글을 어떻게 발행하나 등등 그 생각들은 폭도 넓을 뿐만 아니라 셀 수 없이 많기까지 합니다. 생각이 많은 게 뭐가 그리 큰 문제가 될까요? 다만 이런 생각들은 어떤 식으로든 우리가 글을 쓰는 데 있어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생각들에 사로잡혀 있다면 기껏 글을 써놔도 발행 버튼을 누르기가 힘들게 됩니다.


우리가 쓴 글을 타인이 읽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기껏 써 놓은 글에 대해 아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이 역시 조금도 마음에 담아 둘 일이 아닌 것입니다. 정작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글쓰기를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좋아하는 우리가 이러다 지쳐 글쓰기를 그만두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활동을 할 때 이왕이면 잘하고 싶은 건 당연한 마음입니다. 이때 우리는 흔히 그 일을 즐기는 자가 어쩌고 저쩌고, 좋아하는 자가 어쩌니저쩌니 하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맞습니다. 어차피 할 것이라면 그 일을 즐기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전 최상위 그룹에 '많이 하는 자'를 놓고 싶습니다. 재능이 있고 없고를 떠나 많이 하는 사람을 우리가 어찌 따라갈 수 있을까요? 그것이 결국은 이 책의 저자가 말한 '마구 쓰기'의 본질이 아닐까요?


조금은 낯간지러우나 저는 비교적 글을 많이 쓰는 편입니다. 이 책 저자의 말을 믿어서가 아니라, 마구 그리고 많이 쓰는 것이 글을 잘 쓸 수 있는, 느리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란 걸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물론 전 아직 멀었습니다. 최소한 한 1만 편은 써보고 나서 저의 글쓰기 재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까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꾸준함을 이기는 것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