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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Sep 29. 2024

고독을 이길 힘을 길러라.

문학은 읽는 것이며 쓰는 것이지, 논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소설 쓰기를 목표로 하는 자는, 문학론 따위와는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해야 한다. 그리고 홀로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마땅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중략)……
고독을 이길 힘이 없다면 문학을 목표로 할 자격이 없다. 세상에 대해, 혹은 모든 집단과 조직에 대해 홀로 버틸 대로 버티며 거기에서 튕겨 나오는 스파크를 글로 환원해야 한다. 가장 위태로운 입장에 서서 불안정한 발밑을 끊임없이 자각하면서 아슬아슬한 선상에서 몸으로 부딪치는 그 반복이 순수문학을 하는 사람의 자세인 것이다.
카메라맨이나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매스컴이란 무대에서 바보춤을 추며 신나게 사는 소설가들이 있다는 등의 이유로, 소설이나 써봐야겠다는 식의 안이한 생각으로 달려든다고 될 일이 아닌 것이다.
단순히 문학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소설가가 되고 싶어 하는 지망생들이 있는데, 그리 나쁜 일은 아니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만두는 편이 낫다. ☞ 마루야마 겐지, 『소설가의 각오』, 207쪽

마루야마 겐지라는 이 사람은 참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1966년 그의 처녀작으로 <문학계>의 신인문학상을 수상한데 이어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수상 당시 일본문학 사상 최연소 아쿠타가와상 수상자란 타이틀을 얻게 해 주었습니다. 이 전무후무한 기록은 37년이나 계속되었다고 합니다만, 제가 이 소설가에게 주목하는 이유는 이런 표면적인 이력 때문이 아닙니다.


사실 그의 소설들 몇 권을 읽어 보면 그다지 재미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뭐, 그저 그렇고 그런 소설들 중의 한 권인지도 모릅니다. 다만 이 느낌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의 작품을 읽어 보면 늘 그런 생각들이 들곤 합니다.

'이 사람, 정말 소설 쓰기에 진심이구나!'

뭔가를 꾸미려는 생각 따윈 전혀 없습니다. 정말이지 그저 앞만 보고 달리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곤 합니다. 더러 어떤 장면들에선 충분히 독자를 몰아갈 만한 데도 그런 기색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작품을 창조하는 입장에서 그의 재량을 최대한 발휘하는 사람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체적인 느낌으로 생각해 보자면, 그의 소설을 지인에게 추천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솔직히 재미는 별로입니다. 다만 저는 마루야메 겐지를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소설가 몇 명 중의 한 사람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그의 작품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는 지금도 주변과의 연락을 단절한 채 외딴 오지 마을에 들어가 아내와 함께 생활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한때는 소설만 썼지만, 그것이 생활고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내부적인 생각의 변화 때문인지 종종 이런 류의 수필집 등도 펴내곤 합니다. 물론 시쳇말로 마루야마 겐지의 '빠'인 저로서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는 그 어떤 SNS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게다가 아직도 육필로 원고를 쓰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문명의 이기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채 살아가면서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괴짜 중의 괴짜라고 보면 됩니다.


게다가 그는 어떤 문단 활동도 하지 않습니다. 그는 문단 활동을 일종의 '바보짓'이라고 여기기까지 합니다. 왜냐하면 그창작 활동을 강조하는 것이 바로 '고독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누군가와 함께 어울리면서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혼자 자기만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서 원석을 캐는 것, 그것이 진정한 창작 활동이라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소설 쓰기를 좋아합니다.
저는 시간이 나면 소설을 씁니다.
나중에 언젠가는 소설가가 되는 것이 제 꿈입니다.


일단 저는 말은 그렇게 합니다. 실제로 제 마음이 그렇기도 하고, 제가 그 많은 글을 쓰는 동안에도 늘 마음속에선 소설 쓰기가 제 인생의 제1의 목표라고 인식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루야마 겐지를 생각해 보면, 과연 이렇게 나태하고 안일한 제가 소설을 써도 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소설 쓰는 사람이 따로 있는 건 당연히 아니겠지만, 전 이런 사람이야말로 소설을 쓰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면, 혹은 소설을 쓰려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그의 생각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꼭 소설이 아니더라도 상관이 없을 겁니다. 글쓰기를 향한 그의 뚝심과 목에 칼이 들어오는 한이 있어도 바꾸지 않을 것 같은 작품을 향한 집념은 우리가 꼭 배워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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