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수행은 이렇게 하면 된다.
1. 손을 계속 움직인다. 10분을 쓰기로 결심했다면, 또는 20분이나 한 시간을 쓰기로 결심했다면 멈추지 말고 계속 쓰도록 한다. 펜을 꼭 잡고 신들린 듯 써 내려가라는 말이 아니다. 그냥 멈추지 않으면 된다. 그래야 마음의 미개척지까지 뚫고 내려갈 수 있으며, 생각하고 보고 느껴야 한다고 여기는 곳이 아니라 정말 생각하고 보고 느끼는 곳에 가닿을 수 있다. …… (중략) …… 10분 동안 썼는데 계속 헤맬 수도 있다. 괜찮다. 글을 쓰기 시작할 때 어떤 깊이의 마음이든 물리치지 않고 받아들이면, 그 마음은 결국 글로 나타날 것이다.
2. 아무리 하잘것없는 소재라도 거리낌 없이 쓴다. 보석을 캐려면 머릿속을 완전히 갈아엎어야 한다. 사실 글쓰기 연습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보석을 찾는 법이 아니라 우리의 온전한 마음을 만나고 수용하는 법이다. 따분한 생각, 불만이 가득하고 난폭하고 강박적인 생각, 부정적이고 비열하고 수치스럽고 소심하고 유약한 생각들을 쓰다 보면 우리는 그것들을 대면하게 되고, 결국 우리의 일부인 그것들과 가까워진다. 그렇게 되면 그러한 생각들에 휘둘리지 않게 된다. …… (중략) …… 글쓰기 수행은 우리 안에 있는 것들을 모두 호출한다. 우리가 억누르고 판단하지만 않으면, 그것들 모두가 나름대로 독특하고 개성 있는 보석이 되지 않을까? ☞ 나탈리 골드버그,『구원으로서의 글쓰기』, 민음사, 57~59쪽
글쓰기는 그다지 어려운 영역은 아닙니다. 다만 말하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어렵다고 느껴지는 게 사실이긴 합니다. 말이라는 건 생각났을 때 내뱉어 버리면 어떤 형태로든 표현되는 것이지만, 생각난 것을 모두 글자로 변환시켰을 때 그것이 곧 글이 되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쉽지 않은 글쓰기의 세계에 뛰어들었습니다. 어찌 보면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라 아니할 수 없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글쓰기에 빠져 있고, 어쩌면 아무도 읽어주지도 않을 글을 쓴답시고 온종일을 노트북이나 노트 앞에 끙끙대며 앉아 있기까지 합니다. 즐겁게 삶을 사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것 만큼 어리석어 보이는 일이 또 어디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는 수행과 같다는 말을 하는 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수행이라는 것은 수행자의 상황이나 여건 등을 고려하지 않는 법입니다. 자신이 가진 어떤 내적인 목적이나 목표가 있다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정진에 또 정진을 거듭해야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즉 바쁘다고 해서 수행을 건너뛴다거나,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해서 수행을 미룬다면 그는, 수행을 통해 이루려는 그 어떤 목적도 결코 달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목표로 하는 선수가 비나 눈이 온다고 훈련을 쉬지 않듯 수행자는 어떤 시간에서든 혹은 어떤 장소에서든 자신의 수행을 게을리해선 안 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글쓰기와 수행이라는 것이 상당 부분 닮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일정한 어떤 성과를 거둘 때까지 시도 때도 없이 정진해야 하는 것이 수행이듯, 글쓰기 역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해야 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면 저마다 가슴속에 어떤 목표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여기 계신 그 어떤 분만큼도 오래 글을 쓴 건 아닙니다. 다만 늦게 시작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누구보다도 오랜 시간 동안 혹은 쉬지 않고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게 매일 글을 쓰면서 확실히 느끼게 된 점이 있습니다. 글쓰기라는 것은 단순한 반복적인 언어활동의 하위 영역으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라는 사람을 수행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때마침 나탈리 골드버그는 친절하게도 삶 속에서 글쓰기를 통한 수행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먼저 그녀는 우리에게, 일정한 시간을 딱 정해놓고 글을 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 이제 시간이 났으니 글을 한 번 써 볼까?'가 아닙니다. 짧게는 10분에서 길게는 몇 시간이라도 좋으니 그 시간을 정해놓고 글을 쓰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시간만큼은 절대 엉덩이를 바닥에서 떼지 말고 또 손을 멈추지 말고 쓰라고 합니다. 손을 멈추지 말라는 것은, 조금은 극단적으로 말했을 때 생각을 하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될 듯합니다.
사실 글을 쓰기 전엔 무엇보다도 생각의 개입이 필요합니다. 오죽하면 생각하기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조건에 반드시 꼽힐 정도이니까요. 그러나 막상 글을 쓴 뒤부터는 생각이 개입되지 않는 것이 더 좋은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런 생각들은 대개 현재 쓰고 있는 글을 멈추게끔 작동하기 마련이니까요. 이건 글을 한창 쓰다 잠시만 멈추어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이런 글을 어떻게 발행하지?
다른 사람이 내 글을 읽고 흉보지 않을까?
글쓰기를 딱 멈추는 순간부터 이런 생각들이 글을 쓰는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앉게 됩니다. 솔직히 저런 생각이 든다면 그 글을 어떻게 발행할 수 있을까요? 생각이 많은 것도 글쓰기에는, 특히 글을 쓰는 과정 중에는 결코 도움이 된다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다음으로,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그것에 대해서 글을 쓰면 된다고 합니다. 예쁘고 아름다운 모습과 생각만 글의 소재가 되는 건 아니라는 것입니다. 더러운 것에 대해 쓴다고 글이 더러워지는 건 아닙니다. 부정적이고 강박적인 생각을 쓴다고 그 글이 똑같은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아무리 아름다운 소재로 글을 썼다고 해도 그렇게 표현된 글까지 아름다워지는 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오히려 그렇게 표현된 글 속에서 우리는 더러움을 이겨내고 부정적이고 강박적인 생각을 떨쳐내는 힘을 얻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바로 문학의 힘이 아닐까요?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명색이 작가라면 어떤 소재가 주어지든 글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심지어 아무런 소재가 없어도 글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고 우리는 이 길에 뛰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언제든 어디에서든 글쓰기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능하다면 매일 글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소재에 대해서든 한 편의 글을 완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글을 쓰는 사람의 진정한 자세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