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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Oct 04. 2024

영락없는 한량 신세

252일 차.

지금 딱 영락없는 한량 짓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바닐라 라떼 한 잔을 시켜 놓고 집 앞의 파스쿠찌에서 죽 치고 있습니다. 노트북을 펼쳐 카톡을 열었습니다. 수십 여 개의 메시지가 와 있어 일일이 읽어가며 좋아요를 누르고 필요한 글에는 짤막한 댓글도 답니다. 어쩌면 별 것 아닌 일일 수 있지만, 이것도 다 글을 쓰는 사람들과의 중요한 소통의 장이 되는 것이라 믿기에 허투루 할 수 없습니다.


그동안 써놓았던 소설들을 죄다 꺼내어 한창 읽으면서 다듬고 있습니다. 이런 거국적인 퇴고 작업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제가 쓴 글임에도 불구하고 어떨 때에는 다른 사람이 쓴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냉정하게 저의 글을 가차 없이 난도질합니다. 글을 쓰던 초기에는 제 글을 해부하듯 난도질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더니 이젠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이것도 다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몸부림임을 알고 있으니 최소한 이 순간만큼은 그 어느 누구도 아닌 저의 시야를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얼마 간의 시간을 들여 새로 만들어진 문장들은 마치 갓 데워진 빵을 보는 듯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를 지경입니다.


지금도 다섯 편의 소설은 사실 미완성작이긴 합니다만, 1800여 편의 글 속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서 찾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제가 쓴 소설들이니 제목을 당연히 알고 있어서 브런치스토리에서 검색창을 활용하면 기본적으로 800여 개 정도의 글들이 화면으로 출력이 되니 일일이 찾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참에 생각난 것인데, 브런치스토리에서 검색창을 보다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시스템을 정비했으면 하는 마음도 생깁니다. 조건 검색이나 상세 검색이 가능하면 좋겠다는 말입니다. 가령 예를 들어 제가 쓴 소설 중에서 '그 인간'이라는 게 있는데, 검색창을 활용하니 '인간'이라는 말이 들어간 글이 죄다 출력이 되니 못해도 800여 개 이상의 글이 나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한량은 기본적으로 돈 잘 쓰고 잘 노는 사람을 뜻한다고 합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지금 제가 돈이나 펑펑 쓰며 유흥을 즐기지는 않습니다만, 집에서 나와 이렇게 저만의 시간을 즐긴답시고 글의 세계에 빠져 있으니 이만한 한량이 또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뭐, 한량이라도 좋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글쓰기 작업을 이렇게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껏 할 수 있다면, 지금 이 시각에 해외에 가서 알찬 시간을 보내고 있을 그 어떤 사람 못지않게 저는 보람을 느끼니까요.


한창 소설을 다듬다 잠시 쉬고 있습니다. 이미 파스쿠찌에 들어온 이상 쉰다고 해서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순 없습니다. 비록 아내가 선물로 준 기프트카드로 음료를 주문하긴 했지만, 그래도 피 같은 돈을 들여 자리를 빌린 이상 속된 말로 뽕은 뽑고 가야 합니다. 소설을 쓰다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 이번엔 이렇게 1000일 글쓰기 중의 252일 차 글을 쓰고 있습니다.


원래 한량이라는 족속들은 자기 만족도가 높기 마련입니다. 주변에서 누가 뭐라고 하건 간에 그의 길을 포기할 만큼 귀가 얇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누가 뭐라 한다고 해서 이 좋은 글쓰기를 그만할 저도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또 다른 의미의 한량이기도 합니다.


글쎄요, 과연 오늘의 목표치는 얼마나 될까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쓸 만큼 써볼 생각입니다. 아직 써야 할 글이 최소한 서너 편은 남았으니까요.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써서 뭐 하냐고요? 그것 역시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쓰다 쓰다 보면 무슨 수가 나도 나지 않겠나 싶습니다.


지금 이 순간 한량이라서 더없이 좋습니다. 이미 파스쿠찌에 들어온 지 두 시간이 다 되어 갑니다. 더 못 있을 이유도 없지만 슬슬 눈치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물론 저보고 너무 오래 있다고 핀잔을 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래 봬도 저는 단골이니까요. 잠시 머리를 식혔으니 이제 또 소설을 다듬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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