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일 차.
오늘은 아침부터 일어나서 바빴습니다. 청소기로 실내를 훔쳤습니다. 그러고는 걸레를 봉에 끼워 구석구석 닦았고요. 청소가 끝날 즈음 때마침 빨래가 다 되어 흰 빨래를 제 방 베란다에 있는 빨래 건조대에 탈탈 털어 널었습니다. 다 말랐을 때 구김이 발생하지 않게 하려면 최대한 펼쳐 널어야 합니다. 놔두면 집안에 온갖 악취를 풍길 씽크대의 배수구를 비워 음식물 쓰레기 통에 내다 버렸습니다. 쓰레기도 밖에 내놓았습니다. 대체로 이 정도면 제가 할 일은 다 끝이 난 셈입니다.
이제 노트북을 챙겨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됩니다. 집앞에 있는 파스쿠찌에 가서 글을 쓸 작정이까요. 가방에 노트북 장비를 챙겨 넣고 집을 나서려다 자꾸만 뭔가가 뒷덜미를 잡아채고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실은 며칠 전부터 내내 제 눈을 거슬리게 한 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얼룩이 잔뜩 진 유리창입니다. 어차피 건물 바깥쪽 창문은 어떻게 해도 닦을 방법이 없습니다. 그 말은 곧 얼핏 봤을 때 유리창이 깨끗해질 정도로 닦을 순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도 그 많은 유리창을 마냥 내버려 두기엔 얼룩진 곳이 너무 많았습니다.
지금껏 살면서 제가 나름대로 터득한 지혜가 있다면, 뭔가 했으면 싶은 일이 생겼을 때 길게 생각할 것 없이 일단 그 일을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더러 시간을 더 소모하고 수고를 하더라도, 전 아내의 흐뭇한 미소만 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 됩니다.
글 쓰러 한 시간 늦게 간다고 해서 큰일 날 일은 아니니, 가방을 제 방에 다시 놔두었습니다.
창문 위쪽은 제 손이 닿을 리 없으니 아까 바닥을 닦던 봉에 바닥 청소용 물걸레를 끼웠습니다. 그리고 소주와 물을 섞은 액체가 담긴 스프레이를 유리창에 끼얹습니다. 바닥에 흘러내리기 전에 열심히 손을 놀립니다.
그렇게 닦아봤자 소용없다고 아내는 말하지만, 정작 하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눈칫밥 23년, 여자의 언어는 그때 그때 다릅니다. 해봤자 소용없는 일이지만, 해도 좋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저는 열심히 닦습니다. 그 많은 유리창의 안과 밖을 일일이 닦았습니다. 혹시라도 유리에 흠집이라도 생기면 안 됩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드러운 손놀림으로 유리창을 닦다가 얼룩진 곳에선 손에 힘을 준 상태로 몇 번이고 같은 자리를 왕복해서 닦아야 합니다.
날이 선선한데도 불구하고 다 닦을 때쯤엔 온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 되더군요. 다 끝내고 나니 무척 뿌듯했습니다. 뭘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닙니다만, 늘 몸속에 도사리고 있던 체기가 뚫린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제 나가면 되겠구나, 하며 가방을 매려는 순간 하필이면 그때 가방 옆에 있던 제 방의 선풍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여름 내내 그 뜨거운 폭염을 식히느라 잠시도 쉰 적이 없던 녀석이었습니다. 선풍기 몸체 여기저기에 먼지가 끼어 있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손바닥으로 몸체를 한 번 두드렸더니 눈꽃이 날리듯 먼지가 우수수 떨어집니다.
다시 가방을 내려놓고 집안 구석구석에 있는 선풍기를 죄다 수거했습니다. 제 선풍기, 아내의 것, 그리고 아들과 딸의 것까지 모두 4개를 수거해서 제 방으로 들고 왔습니다. 어차피 날릴 먼지라면 여기저기 날리게 하면 안 됩니다. 한곳에서 모으는 게 효율적입니다.
먼저 몸체의 철제 틀과 날개, 그리고 날개 조임쇠를 욕조에 담갔습니다. 선풍기 몸체의 먼지를 털어내는 동안 부품들에 낀 먼지를 일단은 물에 띄워야 하니까요. 휴지로 몸체를 깨끗이 닦고 손이 닿지 않는 곳은 진공청소기로 먼지를 빨아들였습니다. 완벽히 마음에 든 건 아니지만, 그나마 그렇게라도 하고 나니 속이 개운했습니다. 그다음은 욕조에 담긴 선풍기 부품들을 세재로 깨끗이 닦았습니다. 마지막 마무리는 제 방 베란다에 비스듬히 기대어 놓는 일입니다.
가방을 둘러매고 집을 나서는데 평소처럼 집 식구들의 눈치가 보이지 않더군요. 외박을 나와 있는 아들 녀석이 제게 엄지 척을 날리는 걸 보았습니다. 시간도 들었고 어떤 면에선 번거롭기도 했지만, 참 잘했다 싶었습니다.
마음이 개운해서인지 오늘따라 글이 잘 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저만의 착각이라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접니다. 제가 그렇게 편하게 마음을 먹고 글을 쓰고 있다는 게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이제 4시를 막 넘어서고 있습니다. 아무도 눈치를 주는 사람이 없으니 6시 반 정도까지 글을 쓰다 집으로 갈 생각입니다. 작가도 아니면서 커피 전문매장에 와 음료를 마시면서 작가 흉내를 내고 있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닌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