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명언.
습관이란 건 참 무서운 일입니다. 지금처럼 이렇게 지하철을 기다리느라 승강장에 내려와 있으면 저도 모르게 스마트폰부터 꺼내 들게 됩니다. 눈을 뜨자마자 오늘이라는 하루가 시작되지만, 저의 아침은 글을 써야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보면 무슨 강박증이 있는 사람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아침식사는 건너뛰고 나와도 글은 꼭 써야 하루를 비로소 출발하는 느낌이 드니까 말입니다.
뭘 그리 쓸 게 많으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아이디어 뱅크가 아닌 이상 주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늘 글감이 생기는 건 아닙니다. 항상 글을 쓸 때마다 느끼는 게 있는데, 글감이 준비되어 있어야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글을 쓰지 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뭐, 이렇게 표현해도 될까요? 글감이 있는 날은 신나게 쓰고, 없는 날은 또 그에 맞춰 어떻게든 글을 쓰면 된다는 겁니다.
가족들의 말처럼 글을 하루도 빠짐없이 쓴다고 해서 자다가도 떡이 나오는 건 아닙니다. 하물며 하늘에서 돈이라도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제 만족입니다. 글을 써야 하루가 시작된다는 저와의 작은 약속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 오늘 아침에도 한 편의 글을 쓰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런 저의 모습을 두둔이라도 하려는 듯, 20여 년 동안 작가 지망생과 작가들을 가르쳐온 세미나 리더라는 로버타 진 브라이언트는 다음과 같은 명언으로 저의 아침을 깨우고 있습니다.
작가란 오늘 아침에 글을 쓴 사람이다.
재미있는 영화와 드라마가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매월 일정량의 돈을 지불한다면 어쩌면 죽을 때까지 눈과 귀를 즐겁게 할 것들이 도처에 널려 있는 세상입니다. 그렇다고 그 돈이 그리 큰 돈도 아닙니다. 얼마 되지 않는 돈이니 사람들은 또 다른 저 세계에 쉽게 몸을 담그게 됩니다. 또 누군가의 말처럼 이쯤 되면 골프만큼 괜찮은 것도 없을지도 모릅니다. 골프채를 들고 사람들이 들로 산으로 뛰어다닐 때 저는 스마트폰을 하나 들거나 혹은 노트북을 등에 매고 길을 나섭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게 저와 딱 맞는 것 같습니다. 골프가 좋지 않은 운동이라서가 아닙니다. 결단코 말합니다만, 수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해도 제 길이 아니면 가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살면서 제가 가장 잘한 일이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실행에 옮기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만 생각하면 됩니다. 타인이 인정해 주건 주지 않건 간에 글을 쓴다는 그 자체에만 만족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혹은 누구라도 글을 쓸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겠지만, 글은 타인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 써야 하는 것입니다.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가 기준이 되어선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어디까지나 제가 기준점이고 출발점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욕심을 비우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출간도 하고 등단도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지, 처음부터 출간을 위해 하는 글쓰기는 혹은 등단을 목적으로 하는 글쓰기는 잘못 꿰어놓은 단추와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 본다면 글쓰기의 습관을 형성하기 위해 아침에 글을 쓰는 것만큼 좋은 일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매일 일기를 쓴다고 생각해 보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기를 쓸 때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혹은 작가가 되기 위해 쓰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제 자신을 돌아보고, 일상생활에 지쳐 미처 만나지 못했던 마음속 깊은 곳의 저와 나누는 은밀한 대화, 그것이 바로 글쓰기의 본질이 아닐까요?
요즘 하루도 빠짐없이 수 편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작가가 아닙니다. 저를 아는 사람들은 이런 저를 보고, 작가도 아니면서 무슨 글을 그렇게 목숨을 걸듯이 쓰냐고 묻곤 합니다. 제가 작가가 아닌 걸 모르던 사람들은 그제야 저에게 다시 묻습니다. 그러면 작가지망생이냐고 말입니다. 맞습니다. 저는 작가지망생입니다. 한창 젊었을 때에는 그 많던 시간들을 아무 생각 없이 내다 버리더니 반 백 살이 넘어서 겨우 정신을 차린 모양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저의 아침은 5시 40분에 '오늘은 또 무슨 소재로 글을 쓸까'하는 고민으로 시작합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도무지 뭘 쓸지 몰라서 막막해했던 적이 손에 꼽을 정도라는 점입니다. 보통은 글을 쓰기 전부터 그 소재는 이미 제 머릿속에 들어와 있곤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는 날도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소재를 떠올리는 데 있어서 별다른 문제점은 없습니다. 보통은 즉시 떠오르는 편이고, 간혹 시간이 걸릴 때가 있긴 해도 대체로 5분을 넘기지 않습니다. 제가 특별히 5분이라는 시간을 한계선으로 설정한 건 아닙니다. 다만 너무 많은 시간을 들이면 그 경계선을 넘어서는 순간 글을 쓰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부각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매일 그리 길지도 않은 시간에 뭔가를 고민해서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다는 게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긴 합니다. 어쩌면 그 순간적인 응집력이, 두뇌의 폭발 운동이 주는 충격이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아침마다 이 고단한 노동을 반복하는 이유는, 뇌를 활성화시켜 하루의 시작이 원활하게 되는 것은 물론 이 한 편의 글이 마무리되어야 하루가 순탄하게 시작되었음을 실감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무척 존경하는 은사 님 중 한 분이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 아침에 글을 쓴 그 사람이 바로 작가다!
물론 나중에야 로버타 진 브라이언트라는 사람이 한 말인 것을 알았지만, 누가 말했든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그 명언이 제 마음속에 와 박히고, 그 명언에 따라 오늘처럼 이렇게 아침에 한 편의 글을 썼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감히 말하건대 저는 작가입니다. 누가 제게 '네가 무슨 작가냐?'라고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저는 오늘 아침에 한 편의 글을 썼으니까요.
지금의 이 마음으로 오늘이라는 또 하루를 살아가려 합니다. 매일 아침 작가가 되는 순간을 만끽하기 위해, 행여 나중에 작가가 되지 못하더라도 그동안의 저의 노력이 훗날 부끄러움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그렇게 오늘도 저는 글을 쓰며, 작가로 거듭난 저를 발견하며 학교로 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