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면서 우리는, 혹은 글을 다 쓴 뒤에 읽으면서 우리는 가끔 그렇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내 글이 어디가 어때서? 이만하면 잘 썼지!'
막상 그렇게 생각하며 큰소리치고 싶기는 한데, 한편으로는 심히 부끄럽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때 이 부끄러움이 지나치게 되면 물론 그 글은 발행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우리보다 글을 잘 쓰는 분들이 수두룩 빽빽합니다. 오히려 우리보다 글을 못 썼다고 생각되는 분들을 찾기가 불가능할 정도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이 그렇다고 해도 너무 여기에만 집착하는 사람은 그 어떤 글도 쓸 수 없을 것입니다.그래서 모름지기글을 쓰려는 사람들은 뻔뻔한 속성을 기르는 게 우선순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도 어쩌면 꽤 튼실할 정도로 길러놔야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주변에서 뭐라고 하든지 개의치 않을 만큼 뻔뻔해져야 합니다.
글을 쓸 때면 늘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알게 모르게 우리 안에 있는 내부검열관이라는 녀석의 존재를 말입니다. 내부검열관이라는 반갑지 않은 그 녀석은 늘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으면서 글을 발행할 때마다 방해공작을 펼치곤 합니다.쉽게 말해서 바로 이 녀석이 우리가 뻔뻔해지지 못하도록 활약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렇게 하려는 이유는 명백합니다. 뻔뻔하지 않으면 글도 쓸 수 없지만, 애써 쓴 글을 발행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야! 겨우 이 따위 글을 써서 발행하겠다고? 그러지 말고 다시 생각해 봐! 겨우 이딴 글 올리면 사람들이 너 욕한다고! 정신 차려!"
다들 한 번쯤 들어보았거나 혹은 글을 쓸 때나 발행할 때마다 문득문득 든 생각일 것입니다. 이런 내면의 울림 때문에 애써 썼던 글을 지우기도 해봤을 것이고, 지금도 어쩌면 이 녀석의 속삭임 때문에 '작가의 서랍' 속에 고이 간직해 놓은 글이 여러 편 될지도 모릅니다.
맞습니다. 글을 썼다고 해서 그 모든 글이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해서 쓴 것은 아닐 것입니다. 때로는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그래서 남몰래 간직한 채 혼자서만 읽고 싶은 글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했을 때 타인에게 읽힐 목적이 아니라면, 개인 일기장에 쓰면 되지 굳이 번거롭게 이 공간에 글을 써야 할 필요가 있겠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 말은 곧 이미 이런 온라인 공간에 글을 썼다면, 그 글이 유치하건 아니건 간에 반드시 발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글쓰기 재능을 연마하기 전에 뻔뻔함을 키우라고 말하고 싶다.
『앵무새 죽이기』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의 여류소설가 하퍼 리가 한 말입니다. 그녀는 분명 우리에게 글쓰기에 있어 갖춰야 할 우선적인 자질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글쓰기 재능을 갈고닦는 것보다 뻔뻔한 태도를 먼저 기르라고 말합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말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난데없이 뻔뻔함을 기르라니요? 누가 생각해도 글을 쓰는 데 있어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글쓰기 재능이라고 믿는 게 정상이니까요. 그런데 이건 우리가 평소에 글을 쓰는 모습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입니다.
지금 제가 쓰고 있는 글이 풍부한 재능에서 나온 글이냐고 그녀는 묻지 않습니다. 재능이 뒷받침된 글이라면 사람들에게 보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녀는 재능이 부족하더라도 일단은 뻔뻔하게 글을 타인에게 보이라고 말합니다. 재능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갖춰질 리 없으니 그건 두고두고 갈고닦아나가면 된다고 말합니다.
원래 '뻔뻔하다'는 말이 긍정적으로 쓰이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다만 글을 쓸 때에는, 혹은 자신이 공들인 뭔가를 세상 밖에 내놓을 때에는 이 '뻔뻔하다'는 말이 어느 정도는 긍정적인 쪽으로 작용을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글은 뻔뻔하게 써야 합니다. 저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고, 제가 쓴 글이 세상 그 어디에도 내놓을 만한 수준의 것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린 일정한 재능을 마련할 때까지 쉼 없이 글을 써야 합니다. 이것저것 재고 말고 할 것도 없이 틈만 나면 써야 합니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잘 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고기를 먹는 것과 글이 어떻게 같냐고 반문해도 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이런 차원에서의 개념이라면 고기를 먹는 것과 글을 쓰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글도 써 본 사람이 잘 씁니다. 아니 이렇게 말하면 안 되겠네요. 글도 써 본 사람이 잘 쓸 것이라고 믿습니다.
글을 발표할 때에는 뻔뻔해야 합니다. 읽는 사람이 무릎을 탁 치고 고개를 주억거릴 정도로 잘 썼다고 해도 누군가는 그 글에 트집을 잡기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이게 무슨 글이냐며 생각이 드는 글도 누군가는 그 글에서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글을 쓸 때 무엇보다도 모든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으려는 생각을 버릴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같은 이유에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서 공감을 이끌어 내려는 것 역시 지나친 욕심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건 분명한 듯합니다. 아무리 잘 써도, 혹은 어떤 식으로 써도 우리가 쓴 글은 대체로 타인에겐 쓰레기일 수밖에 없다는 걸 말입니다. 그러니 뻔뻔하게 쓰고, 뻔뻔하게 글을 발표할 수 있는 태도가 무엇보다도 필요하지 않겠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