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작이 Oct 21. 2024

글을 쓰려면 넘어질 걸 각오해야 합니다.

세 번째 명언

한창 몰입해 글을 쓰다 보면 가끔 잊을 때가 있습니다. 지금 쓰고 있는 글을 가장 먼저 읽게 될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입니다. 바로 글을 쓰고 있는 제 자신입니다. 그것도 최소한 두세 번 이상 읽게 될 가능성도 큽니다. 심지어 아무도 읽지 않아도 혼자 감격해서 읽고 또 읽을지도 모릅니다. 이만하면 제 글의 독자 중에서도 저는 꽤 열렬한 독자에 속하는지도 모릅니다. 어느 누가 저의 글을 두세 번씩이나 읽어 줄까요? 게다가 감동을 받거나 눈시울이 촉촉해지곤 할까요? 그리 보면 자신의 글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자기 자신 말고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굳이 타인에게까지 애써 쓴 글을 보이는 걸까요?


사실 전문 작가를 제외하고 글을 쓰는 사람들은 대체로 양가감정을 갖기 마련입니다. 자신이 쓴 글을 그 어느 누구도 읽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누군가가 읽고 자신의 글에 대한 평을 남겨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혼재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이 쓴 글을 읽었다면 부정적인 내용보다는 긍정적인 평을 바라게 됩니다. 그것은 자신의 글이 부족함을 모른다거나 부족하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어떤 말을 들었느냐에 따라 심적으로 받는 상처의 크기가 달라질 수 있고, 그 상처의 크기는 다음 글을 구상하거나 집필하는 단계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것입니다. 보다 더 쉽게 말하자면 글을 쓰는 동안 웬만하면 넘어지고 싶지 않다는, 쓰러지고 싶지 않다는 심리를 반영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 몇 번이나 넘어져야 배울 수 있듯 글쓰기 역시 넘어짐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해낼 수 없는 일입니다.


글을 쓰고 싶다면, 정말로 뭔가를 창조하고 싶다면 넘어질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미국의 소설가 엘레그라 굿맨이 한 말이라고 합니다. 그는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에게 과감히 제안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 싶다면, 정말로 뭔가를 창조하고 싶다면, 넘어질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 말은 곧, 넘어질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지 않으면 글이라는 이상 세계를 창조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또는 글을 쓰는 동안 몇 번이고 넘어졌다가 일어서는 등의 행위를 반복할 자신이 없다면 글을 써서는 안 된다는 뜻일 것입니다.

아마도 세상을 들었다 놨다 할 정도의 몇몇 천재적인 작가가 아니고서야, 생각한 것을 단숨에 옮길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 그렇게 옮긴 것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큼의 대작이 될 가능성은 극히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글쓰기라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에 속한다면 이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골머리를 앓아야 할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에 대해 깊은 고민을 갖고 있습니다. 잘 쓰고 싶어 하는 마음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기본적으로 깔려 있고, 누군가에게 글을 보이긴 보여야겠는데 혹시라도 좋지 못한 평을 들으면 어떡하나 싶은 걱정도 품고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같은 혹평을 듣고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정도로 상처를 입으면 어떻게 할까 하는 염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은 혹은 우리는 혹은 저는 지금도 여전히 이렇게 골방에 틀어박혀 글을 쓰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논리적으로 웃기는 일이기도 합니다. 잘할 자신은 없는데 언제 어디에서든 글은 쓰고 싶고, 그렇게 쓴 글에 대해 따르게 될 비판이나 지적에 대해 당당하게 맞설 자신은 없는데도 글을 쓰게 된다는 것이 말입니다.


글이라는 게 그 어떤 것이든 단순하지 않듯 글을 쓰는 사람 역시 이렇게 복잡 미묘할 수밖에 없습니다. 넓은 광장 한가운데에 마치 발가벗겨진 채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 그것이 바로 글을 쓰는 사람의 마음이니까요.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단순한 사람은 혹은 최소한 감정적으로 순수한 사람은 글을 쓸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굳이 글을 써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면 깊은 곳에서 풀어내야 할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니까요.


앞에서 제 글의 가장 소중한 독자는 바로 저 자신이란 얘길 했습니다. 창작자이면서 독자이기도 한 저에게, 저는 또 하나의 자격을 부여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제가 쓴 글이나 쓰게 될 글에 가장 깊은 관심과 지지를 보낼 유일한 사람으로서의 자격 말입니다. 그 말은 곧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제 자신에게서 제 글이 합격점을 받아야 비로소 다른 사람에게 글을 보여줄 수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과연 제가 쓴 글에 대해 냉정한 시각을 갖출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제가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 얼마만 한 노력을 했는지, 혹은 어떤 고생을 했는지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아마도 제 글을 바라볼 때마다 판단 의식이 흐려지고, 이유야 어떻든 제 글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도 어쩌면 제 자신이 측은하게 느껴지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맞습니다. 아등바등하며 한 편의 글을 완성한 제 자신의 일말의 노력이 눈물겨울 때가 있긴 합니다. 그래도 저는 더 좋은 글을 완성하기 위해 언제든 어디에서든 기꺼이 넘어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두꺼운 매트가 깔린 바닥이든 콘크리트 바닥이든, 심지어 포장조차 되지 않은 울퉁불퉁한 흙길이든, 그 어디가 되었건 간에 지금이라도 자빠져야 한다면 그대로 드러누워 버리겠다고 마음을 먹으려 합니다.


글을 쓰고 싶다면, 정말로 뭔가를 창조하고 싶다면, 넘어질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이것은 지금도 묵묵히 한 편의 글을 쓰고 있는 제 자신에게 제가 하는 말입니다. 논리를 따지기 전에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꼭 갖고 있으면 좋은 생각이 아니겠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글을 쓰려면 뻔뻔함부터 키우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