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명언: 기준을 낮추고 계속 써라.
기준을 낮추고 계속 써라.
당신이 오늘 잘 썼는지 못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우리에게 기준을 낮추라고 합니다. 거기에 한 발 더 나아가서 계속 쓰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도자기를 굽는 장인을 생각해 보면 될 듯합니다. 그들에겐 타인이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예술적인 기준이 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 간에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도자기가 나오면 가차 없이 깨뜨려 버립니다. 주변에서는 이만하면 질 좋은 도자기라고 말하지만, 장인에겐 조금의 위안도 되지 않습니다. 오직 자기 내적인 기준만이 판단의 근거가 될 뿐입니다.
글쓰기에서도 어쩌면 이런 생각을 갖고 계신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윌리엄 스태포드가 이런 자기 내적인 판단 기준이 틀렸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어쩌면 그는, 예로부터 글을 잘 쓰는 데 있어 필수 요건으로 알려진 구양수의 말이 보다 더 합리적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다독, 다작, 다상량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문장의 길이를 약간 줄여보겠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될 것입니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많이 써야 한다.
충분히 경험해 보셨겠지만, 많이 쓰려면 어느 정도는 욕심(?)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일필휘지로 글을 쓰겠다는 생각도 버려야 하고, 누가 읽든 그 어떤 비난 혹은 혹평을 하지 않을 만큼 완벽한 글을 써야겠다는 욕심도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묵묵히 생각한 것을 글로 옮기는 것뿐입니다. 여기에서 어쩌면 가장 우리가 경계해야 할 욕심은 '내 마음에 드는 글을 쓰겠다'는 생각인지도 모릅니다.
지극히 사견 하나를 말씀드릴까 합니다. 언젠가 한 번 제 마음에 쏙 드는 글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 글이 얼마나 제 마음에 들었던지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글을 읽히게 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당일 저녁에 읽어 보니 글이 형편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읽어 보니 이만하면 그럭저럭 잘 썼다 싶기도 했습니다. 물론 저녁에 한 번 더 읽으니 또 다른 마음이 들더군요. 즉 제가 설정한 제 나름의 기준도 전혀 믿을 것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 이 명언을 다음과 같이 바꿔서 생각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기준을 생각하지 말고 계속 써라.
당신이 오늘 잘 썼는지 못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결국은 많이 써보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많이 쓴 것들 중에서 더러는 마음에 드는 것도 있고, 또 몇몇은 함량 미달인 글도 있을 것입니다. 앞서 말한 저조차도 못 믿을 기준으로 굳이 제 글을 제단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보다 글을 더 잘 쓰는 누군가에게 검사를 받고 발행을 한다는 것도 이치에는 맞지 않는 일입니다. 그러니 일단 평가는 나중으로 미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기준을 낮추고 지속적으로 글을 쓰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거기에 한 걸음 더 진전이 가능하다면 기준을 생각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글을 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