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명언: 비법이 없다는 걸 아는 것, 그것이 비법입니다.
저희 집에는 유독 글쓰기와 관련한 책들이 많습니다. 처음 글쓰기를 시작할 때 어떻게든 글을 더 잘 쓰고 싶다는 과욕이 빚어낸 해프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마음 같아선 몇 권만 빼고 내다 버리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다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책을 버린다는 건 가당치 않은 일인 것 같아 망설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무슨 신줏단지 모시듯 서가의 한켠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어떤 책들은 더러 경전처럼 신성하게 대하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책들은 먼지만 쌓인 채 애꿎게 공간만 차지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사실 그 책들은 죄다 아내의 눈치를 봐가면서 부지런히 사다 모은 것들입니다. 게다가 있는 시간 없는 시간 쪼개어 그 책들을 읽었습니다. 아마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건 그때까지만 해도 분명 글쓰기에는 그 어떤 ‘비법’이 있을 것이라고 믿은 탓이 아니겠나 싶습니다. 사실 비법을 안다는 게 나쁜 일은 아닐 겁니다. 괜히 고생해 가며 허우적대는 것보다는 비법이 제시한 대로 글을 쓰면 조금은 더 쉽고 편하게 쓸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과연 글쓰기의 ‘비법’을 그 책들 속에서 발견했을까요?
글쓰기에 비법은 없습니다. 그냥 아무 생각하지 말고 닥치는 대로 쓰면 됩니다. 비법이 없다는 걸 아는 것, 그것이 바로 글쓰기의 비법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제가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수년 동안 국내외 저자들의 글쓰기 관련 책을 족히 200여 권은 읽었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넘으면 넘었지 모자라지는 않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렇게 많은 책을 읽고 제가 내린 결론이니 영 근거 없는 말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처럼 당당하게 말하고 있는 저임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저는 여전히 글쓰기와 관련한 책이 눈에 띄면 책을 펼쳐 보곤 합니다. 습관이 이래서 참 무서운 것입니다. 아무튼 그런 류의 거의 대부분의 책들의 주제를 요약하면 대강 이렇게 될 것 같습니다.
글을 쓰고 싶으시다고요? 책을 내고 싶으시다고요? 눈 딱 감고 요렇게 며칠만(혹은 몇 달만) 해보세요. 여러분도 저처럼 책의 저자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그들(저자들)은 그렇게 해서 실제로 책을 출간한 사람들입니다. 적어도 책을 출간한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그 책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신뢰감이 가기도 할 것입니다. 그들이 말한 것처럼 그 결과물을 우리에게 눈으로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하다못해 그냥 이렇게 헛소리나 하고 있는 저보다는 훨씬 나은 위치에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래서겠지요? 몇몇의 사람들 혹은 경우에 따라서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런 책들을 나침반 삼아 매진한 끝에 그들 역시 저자가 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린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글쓰기 책을 읽고 실제 글쓰기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거나 또는 책을 출간한 경우는 그저 성공한 일부 몇몇 사람들의 사례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이고 저는 저입니다. 사람이 다른데 어떻게 확실한 지침이 되는 책이 있을 수 있을까요? 보물 지도를 들고 있는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이 보물을 찾으러 나선다고 해도 막상 보물을 찾는 사람들은 극소수일 뿐입니다. 각자 자기만의 방식이 있고, 각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다는 것, 그것이 대체로 글을 쓰는 사람들의 처지입니다. 즉, 다시 말해서 모두에게 통용되는 일률적인 원칙, 혹은 비법은 없다는 것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게 되면서 그들의 표현물이 단행본으로 나오곤 합니다. 전적으로 마음에 쏙 들지는 않더라도 그런 그들의 노력이나 결과물에 대해 제가 감히 반감을 드러낼 수는 없는 일입니다. 최소한 그들은 자신이 설정한 목표 아래 일정 기간 노력하여 한 권의 책이라는 결실을 거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설령 시쳇말로 듣보잡 작가들의 책들이라고 해도 그들을 경원시할 명분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언젠가 책을 출간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저 역시 사람들에겐 '1/n명의 듣보잡' 중의 한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이겠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 저는 '글쓰기'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책이 있으면 일단은 넘겨보게 됩니다. 아마도 그런 심리가 작용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글을 쓰고 있는지 궁금한 것입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저는 잘해 나가고 있는지 비교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는 그럴 일이 없을 거라는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단 한 줄 혹은 한 문장만 건져도 그 책은 읽을 가치가 있다는 생각에 무턱대고 집어 들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감히 말하건대 저는 글쓰기에 그 어떤 비책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약간의 팁을 얻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혹은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이 옳은 방향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가끔은 소재가 곤궁해 글이 더 이상 진척이 없을 때 다소의 도움은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글쓰기와 관련한 책을 읽을 때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딱 여기까지입니다. 만약 그 이상을 바라고 있다면 그건 현명한 태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글쓰기 관련 책의 그 어디에도 저에게 딱 맞는 혹은 제가 지금 당장 필요로 하는 비법을 가르쳐 주는 대목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는 내내 늘어진 우리를 일으켜 세워주거나 하나의 글을 완성한 뒤 또 다른 글로 넘어가는 그 힘을 부여해 주는 글쓰기 책은 세상 그 어디에도 없더라는 것입니다. 잘 쓴 글이 되었든 형편없는 글이 되었든 그 글을 쓰는 사람은 우리가 멘토로 삼는 기성 작가들이 아니라, 바로 글을 쓰는 자기 자신입니다.
글쓰기의 비법은 글쓰기 책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글을 쓰고 있는 우리 안에 있습니다.
이제 지극히 당연한 논리를 들어 이렇게 요약해 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혹시 아직도 글쓰기의 비법을 찾고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그 비법을 찾을 시간에 한 줄의 글이라도 더 쓰는 게 현명하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