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명언: 글쓰기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노동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슬쩍 딴지를 걸어옵니다. 원래 우리가 시간이 날 때 뭔가를 한다고 가정하면, 적어도 그 일을 꽤 능숙하게 해낼 수 있거나 작은 성취물이라도 얻을 수 있을 때 그것이 곧 특기가 됩니다. 그분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최소한 자신의 특기가 될 만한 것을 수행할 때 우리는 행복을 느끼지 않겠느냐고 말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그 말은 곧 저에게 이렇게 반문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당신이 그렇게 글을 잘 쓴다는 말이야?"
세상의 모든 것들을 하면서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그 많은 것들 중에 그다지 잘 해내지 못하면서도 즐거움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것 중의 하나가 글쓰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글쓰기는 어쩌면 결과보다는 그 쓰는 과정에서 더 큰 행복을 느끼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 행복의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외로움은 수반됩니다. 그래서 아마도, 『분노의 포도』, 『에덴의 동쪽』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미국의 대문호 존 스타인벡이 그런 말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쓰기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노동이다.
존 스타인벡은 우리에게 글쓰기라는 것은 외로운 노동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외로운'이라는 표현과 함께 저는 '고독한'을 떠올려 보고자 합니다. 외로움과 고독이라는 두 낱말은 우리에게 워낙 익숙한 단어이긴 합니다.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두 낱말의 뜻은 꽤나 유사해 보였습니다.
외롭다: 혼자 있거나 의지할 대상이 없어 고독하고 쓸쓸한 상태에 있다.
고독하다: 홀로 있어 외롭고 쓸쓸하다.
얼핏 이렇게만 본다면 외로움과 고독은 모두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한 말로 여겨집니다만, 미국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폴 틸리히는 두 가지를 명백하게 구분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외로움이란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하기 위한 말이고, 고독은 혼자 있는 즐거움을 표현하기 위한 말이다.
어쩌면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겠지만, 저는 글을 쓸 때 외로움을 느끼진 않습니다. 차라리 그것은 고독에 가까운 감정 놀음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저의 글쓰기는 감정의 놀음이자 유희이며, 그런 이유 때문에 제게 글쓰기는 노동이 될 수 없습니다.
자, 그렇다면 존 스타인벡의 글쓰기 명언을 이렇게 바꿔서 말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글쓰기는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놀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