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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Oct 12. 2024

국가공무원법 제7장

#3.

그제야 교감이 안도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철현의 할머니에게 말을 건넸다.

"할머님! 보셨습니까? 이게 바로 본교 학부모님들의 생각이십니다."

"면목 없습니다. 어느 정도의 반발은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어느 한 군데에 정을 못 붙이던 우리 철현이가 이제 겨우 적응 좀 하나 싶었는데……."

"저희야 철현이가 여기에 있어도 괜찮습니다만 학부모님들이 저렇게 싫어하신다면 아이에게도 그다지 득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게다가 철현이를 지키기 위해서 훨씬 더 많은 아이들이 본교를 떠나게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철현이를 위하는 길인지 댁에 돌아가셔서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이었다그는 철현이 이 학교에서 떠나기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위인이었다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한 얼굴을 한 교감은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하 선생은 교감을 뒤따라갔다.

“왜요, 무슨 할 말이라도 남았나요?”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승진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내년 초에 교장으로 승진할 거라고 알려진 교감이었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교장도 인근 K시 교육장(하급교육행정기관인 시·군·구 교육지원청의 총책임자)으로 발령받아 갈 거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철현은 그들에게 시한폭탄과도 같은 존재였을 테다. 불미스러운 사고가 일어나는 날엔 두 사람 다 향후의 진로에 먹구름이 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차피 예정된 승진이 진행된다고 해도 그 불미스러운 사고의 정도의 따라 시일이 충분히 늦춰질 수 있는 문제였다.

오직 자신의 일신만 생각하는 그들이었다. 어떤 일이 벌어지든 자신이 관리자로 있는 동안은 교내에서 그 어떤 사고나 사건도 일어나선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만에 하나 책임 소재가 따르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린아이가 그 책임을 떠안게 된다 해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사람들이었다.


저녁상을 물리고 무심코 TV를 보는 동안에도 하 선생은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옆에 앉아 사과를 깎던 윤정이 쟁반에 칼을 내려놓았다.

“사람이 왜 그렇게 멍해? 무슨 고민거리라도 생긴 거야?”

“응. 아무리 생각해도 해결이 안 나는 문제가 있어서 말이야.”

가끔 감정에 사로잡혀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할 때 누구보다도 냉철한 생각을 들려주던 윤정이었다. 어쩌면 마음 한편에서 아내인 윤정이라도 자신을 지지해 주길 바란 건지도 모르겠다.

하 선생은 철현이 전학을 오게 된 과정부터 낮에 회의실에서 있었던 소동을 윤정에게 얘기했다. 얘기가 끝나자마자 윤정은 하 선생을 노려보며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난 이러는 당신이 도무지 이해가 안 돼이제 혈기왕성했던 시절의 풋내기 교사가 아니잖아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텐데 왜 그걸 몰라그리고 당신도 당신이지만 당신에겐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잖아뱃속의 우리 아기는 어쩌고?”

“이 일과 우리 아이가 무슨 상관이 있다고 갑자기 그런 말을 하고 그래?”

“왜, 상관이 없어? 혹시 그렇게 무모하게 나섰다가 명령불복종 같은 걸로 징계라도 받으면 어떻게 할 거야?”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고심하는 하 선생과 달리 윤정은 대뜸 징계부터 거론했다.

“징계는 무슨……. 이게 징계 거리가 된다고 생각해?”

“그럼, 되고도 남지. 그러면 뭐, 당신은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직장생활을 했다고 생각해설사 그렇다고 쳐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어디 있어어차피 관리자들에겐 귀에 걸면 귀걸이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거라고어디에 어떻게 갖다 붙이느냐에 따라 흠 하나 정도는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이야한두 해 학교에 있었던 것도 아닌데 아직도 그런 것 하나 파악하지 못했단 말이야?”

"당신 얘기는 충분히 이해했는데비약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하 선생은 막상 그렇게 말하면서도 윤정의 말에 오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터운 담벼락 하나가 둘 사이에 비집고 들어 온 느낌이었다허리에 양손을 올린 채 억양을 높이는 모습이 어쩐지 낮에 회의실에서 보았던 학부모들의 모습과 너무도 흡사했다한쪽 귀로 윤정의 잔소리를 듣는 동안 반대쪽 귀에선 학부모들의 원성이 울려댔다.

“징계도 징계지만 시간이 갈수록 당신이 학교 선생님들로부터 따돌림당할 게 분명한데 날 더러 그걸 두고 보라고?”

“따돌림당하긴 누가 당해? 내가 뭐 나쁜 일이라도 벌인다는 거야?”

“그런 말이 아니잖아. 사람이 왜 이렇게 답답해? 나도 당신이 옳은 일을 하려고 한다는 건 알아. 하지만 옳은 일이 반드시 선한 결과를 가져오는 건 아니야. 아무리 옳은 것이라 해도 열 사람 중에 아홉이 그르다고 하면 그건 아닌 거야. 그게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란 말이야. 저마다 제 앞가림하기 바쁜 사람들이 어디 남의 일에 신경이나 쓸 거라고 생각해? 당장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돌아올 것 같으면 자신이 살 길부터 찾는 게 사람이라는 거 몰라? 특히 그게 교직사회의 특성이란 것도 말이야.”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하 선생은 과연 윤정이 자신의 아내가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어느새 윤정의 입에선 옳지 않은 행동을 한 초등학생을 나무라는 담임교사 같은 말투가 쏟아져 나왔다.

한 이불을 덮고 한솥밥을 먹고 산다고 해도 안 되는 건 어떻게 하더라도 안 되는 모양이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죄다 등을 돌려도 아내인 윤정만큼은 자신의 편이 되어 줄 거라 확신했던 그 믿음이 헛된 것에 지나지 않았다.




회의실 점거 소동이 있고 나서 한 주가 지났다. 겉보기에는 평온하고 조용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그날 이후로 학교를 다시 찾아와 소란을 피우는 사람도 없었다교장과 교감도 별다른 언급은 없었다.

정작 문제는 후폭풍이 아이들에게까지 전염되었다는 것이다아이들은 하 선생이 보지 않는 곳에서 철현에게 압력을 가했고, 급기야 대놓고 철현을 따돌리기 시작했다하 선생은 아마도 학부모들이 집에서 아이들에게 그렇게 사주했을 거라고 생각했다사정이 어찌 되었건 간에 교육자로서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하 선생은 철현을 따돌리는 반 아이들에게 어떤 이유로든 친구를 따돌리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라며 두어 차례 주의를 주었다그런데 그런 하 선생의 교육적인 소신과 지도가 문제를 불러일으킬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하 선생은 교장실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렇게 면담 당사자를 콕 집어서 보자고 한다면 피할 방법이 없다. 지금 당장은 어떻게 핑계를 대고 안 갈 수 있어도 시일을 지체하면 할수록 하 선생에게 불리할 뿐이다. 문을 닫고 자리에 앉자마자 교장은 기다렸다는 듯 말을 꺼냈다.

“그 반에 있는 철현이라는 학생은 아직도 그러고 있나요?”

결국 그 이야기 때문일 거라는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아무 일도 없었는데 하 선생은 또 자신도 모르는 일이 어딘가에서 터진 건가 싶었다.

“아직도 그러고 있다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뭐, 전학을 가겠다는 눈치를 주지 않더냐는 얘기입니다.”

“그런 움직임은 아직 없습니다. 다만 애들이 꺼리고 따돌리는 것 때문에 철현이가 조금 힘들어하고…….”

하 선생의 말을 듣기나 한 건지 미처 말을 끝맺기도 전에 꼬리를 자르고 나왔다.

“안 그래도 그 문제로 할 얘기가 있어서 오라고 한 겁니다. 하 선생님! 그 반 학생들이 모두 몇 명이죠?”

“스물아홉 명입니다.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십니까?”

딸깍거리는 마우스 소리가 몹시 귀에 거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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