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교장은 내내 모니터만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면 하 선생은 선량한 스물여덟 명의 학생들을 방치하고 그 녀석만 신경 쓴다는 얘기인데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철현이만 감싸고 나머지는 방치하고 있다니요?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전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냥 듣고만 있어야 그나마 면담이 빨리 끝날 텐데 하 선생은 자신도 모르게 교장에게 되묻고 말았다.
"뭐, 좋아요. 그건 그렇다 치고 혹시 학생들에게 문제가 될 만한 말을 한 적은 없나요?”
"요즘 부쩍 아이들이 철현이를 집단으로 따돌리는 것 같아서 제가 교육적인 차원에서 그러지 말라고 지도한 적은 있습니다. 그런 교육적인 지도도 문제가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럼요, 충분히 문제가 되고 말고요. 그것도 하필이면 수업 시간에 수업도 안 하고 그런 얘길 했다면서요. 아이들에게는 엄연히 학습권이 있는데 말이에요.”
"수업 마치자마자 학원이다 방과후학교다 해서 바쁜 아이들이니 수업 시간이 아니면 따로 교육을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수업 시간을 활용했습니다. 뭐, 그렇다고 교과 진도가 다른 반에 비해서 느리거나 하진 않습니다. 제 입으로 이런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수업만큼은 빠짐없이 하는 게 제 지론이니까요."
그때 불현듯 나아가야 할 때와 물러나야 할 때를 알아야 한다던 학년부장 선생의 말이 떠올랐다.
'그러면 지금이 물러나야 할 때란 말인가?‘
“참, 답답한 얘기만 늘어놓고 있군요. 누가 진도가 얼마나 늦냐 빠르냐를 물었나요? 수업시간에 그 따위 쓸데없는 말을 하면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안 그래도 본교의 학력이 인근 학교와 비교해 낮다며 학부모들의 근심이 얼마나 깊은지 하 선생도 알 텐데요.”
교묘하게도 수업시간에 수업을 하지 않고 훈화를, 그것도 학교에서 가시 같은 존재로 여기는 철현을 위해서 반 아이들에게 훈화를 했다는 걸 빌미로 삼고 있었다. 물론 학부모들이 학교에 민원을 제기할 때에도 특별히 이 점을 강조했을 것이다.
“사람마다 갖고 있는 교육적 신념은 당연히 다를 거예요. 그 말은 곧 누구의 것이 옳고 누구의 것은 틀렸다며 딱 잘라 말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소신을 갖고 학생들을 교육하다 보면 자잘한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무슨 일을 하든 적어도 학부모들에게서 민원이 쇄도한다면 그 소신이 반드시 옳다고만 볼 순 없을 테지요.”
결국 교장이 부른 이유는 민원 때문이었다. 고작 민원 몇 건에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어떻게 제대로 아이들을 교육할 수 있겠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다른 말은 필요 없습니다. 민원이 있다는 건 하 선생의 교육 방침에 대해 재고의 여지가 있다는 뜻입니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잡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알겠습니까?”
하 선생은 교장이 뭘 두려워하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민원이 발생한다. 교장이든 교감이든 민원을 해결하려고 애를 쓴다. 그런데 뜻대로 되지 않는다. 민원을 제기한 사람은 학교의 굼뜬 대응에 대해 점점 불만을 갖는다. 보다 못한 학부모는 학교보다 더 상부 기관에 민원을 제기한다. 상부 기관은 민원인의 요청이 있으니 일단은 민원에 대응하는 듯한 시늉이라도 내겠지만, 교장이나 교감의 입장에선 그마저도 자신에겐 불명예가 된다. 일주일 전에 호되게 잔소리를 퍼부었던 윤정의 시나리오대로 모든 게 흘러갈 것처럼 느껴졌다.
"교장선생님, 민원이 그렇게도 무섭습니까?"
정곡을 찔러도 제대로 찌른 모양이었다. 마우스에서 손을 떼고 의자에 몸을 누이다시피 하며 교장은 딱하다는 듯 하 선생을 노려보았다. 교장실에 들어온 뒤로 처음 마주친 눈길이었다.
“무섭지요. 멀쩡하게 잘 돌아가던 학교도 하 선생 말마따나 그깟 민원 하나 때문에 마비되는 건 한순간입니다. 그 민원이 사실에 근거한 것이든 그렇지 않든 하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민원이라는 것 자체가 생겨났다는 사실이 문제가 된다는 말입니다. 지금쯤이면 충분히 그 정도는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수요자 중심의 교육만이 진정한 학교의 소임이라고 강조하던 그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의 들쑥날쑥한 논리에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아무튼 내 할 말은 다 했으니 충분히 알아들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다른 할 말이 없으면 이만 나가보도록 하세요.”
문을 열고 나가려던 하 선생은 억누를 수 없을 정도의 반발심을 느꼈다.
“그럼 제가 아이들의 그런 옳지 못한 태도를 계속 지적한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아무리 합리적인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정작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것은 아무런 논리도 갖추지 못한 허황된 얘기로 취급받을 뿐이었다.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가려서 듣는 사람, 그가 바로 교장이었다.
“하 선생! 우리 학교에 점수가 필요한 선생님들이 몇 분 계신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요? 하 선생에겐 별 것 아닌지 몰라도 그분들에겐 절실하다는 것도 말이에요. 근무 여건이 더 좋은 학교로 옮겨가기 위해, 교감으로 그리고 교장으로 승진하기 위해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피땀 흘려가며 노력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요? 멀리 볼 것도 없지요. 당장 우리 학교만 보더라도 그런 분이 몇 분 계시지요. 그런데 그분들에게 박수는 치지 못할망정 재를 뿌려선 안 되겠지요?”
재를 뿌린다는 말이 거슬렸던 하 선생이 인상을 찌푸리자 기다리고나 있었다는 듯 교장이 얄팍한 미소를 지었다.
“본인 입장만 생각한 채 지금과 같이 생각 없이 행동한다면 여러 사람에게 폐를 끼치게 된다는 걸 꼭 기억하세요. 안 그럴 거라 믿고 싶지만 계속 고집을 부린다면 나로서도 딱히 방법이 없지요. 순리대로 하 선생의 징계 절차를 밟아야겠지요.”
“징계라고 하셨습니까? 도대체 무슨 명목으로 징계를 내린단 말입니까?”
“그건 내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거라 믿습니다. 매사에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하길 바랍니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신문을 펼쳐 든 교장은 이내 얼굴 전체를 가렸다. 잔말 말고 얼른 나가라는 뜻이었다.
오후가 되자 예고도 없이 교장이 긴급 교직원 협의회를 소집했다. 회의실로 속속 모여든 선생들은 바빠 죽겠는데 뜬금없이 왜 부르고 난리냐며 툴툴거렸다. 눈치가 빠른 몇몇 선생들은, 너 때문에 부른 게 아니냐는 듯 하 선생을 노려보았다.
한참 동안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던 선생들이 삽시간에 입을 다물었다. 창문에 머리 하나가 비치는가 싶더니 회의실 출입문을 열고 교장과 교감이 등장했다.
단호한 기색이 역력한 교장은 난데없이 A4 용지 반 장짜리의 코팅 처리된 인쇄물을 교무부장 선생에게 전달했다. 이내 그는 협의회에 참석한 선생들에게 배부했다.
"교실에 가시면 교사용 책상 있지요? 거기에 항상 부착해 놓고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교감이 굳이 그렇게 덧붙이지 않았어도 코팅까지 했다는 건 교사용 책상 깔개 유리판 밑에 끼워두라는 의미였다. 무슨 내용인가 싶어 들여다보던 선생들은 있는 대로 인상을 구기고는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하 선생을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