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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Oct 13. 2024

국가공무원법 제7장

#5.

눈빛은 그랬다. 옆에 있으면 당장 한 대 치기라도 할 기세였다. 하 선생은 사람들이 왜 그렇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지 궁금했다.

     

국가공무원법 제7장

제57조 (복종의 의무)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할 때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

제60조 (비밀 엄수의 의무) 공무원은 재직 중은 물론 퇴직 후에도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엄수하여야 한다. 


"국가공무원법(국가 공무원에게 적용할 인사 행정의 기준을 규정한 것으로, 인사 행정의 공정을 기하고 공무원이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행정의 민주적이며 능률적인 운영을 하도록 함을 목적으로 제정된 법률)이라니? 아니 뜬금없이 왜 이런 걸 우리에게……."

따가운 시선이 하 선생에게 내리 꽂히는 가운데 교장이 말문을 열었다.

"요 근래 터무니없는 논리로 관리자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 사례가 있습니다. 관리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는 더없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학교는 조직 사회입니다. 조직 사회는 위계질서가 확립되어 있어야 바로 설 수 있다는 건 누구보다도 여러 선생님들께서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찬바람이 느껴질 정도로 날이 선 목소리였다. 뭐가 그렇게 겁이 나는지 대부분의 선생들은 잔뜩 목을 웅크리고 있었다.

"한 가지 일을 두고도 저마다의 생각은 다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려면 그 많은 생각들을 다 수용할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아무리 옳다고 여겨지더라도 대의를 위해서 자신의 생각을 양보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각자가 자신만 옳다고 믿으면 어떻게 이 큰 조직이 돌아가겠습니까? 우리는 조직 사회의 일원이기도 하지만 그전에 공무원의 신분이라는 것을 결코 잊어선 안 됩니다. 공무원은 사적인 일보다 당연히 공적인 일을 우선시해야 합니다. 즉 어떤 경우에라도 사소한 감정은 배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교장의 말이 필요 이상으로 길어지고 있었다. 결국은 이 모든 원인을 제공한 하 선생에게 비난의 눈길이 쏠리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직장에서 발생하거나 알게 된 여타의 일들은 비밀로 해야 합니다. 행여 여기저기 다니면서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쓸데없는 말로 옮기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엔 그게 우리에게 화살이 되어 돌아오니까요. 어떤 말을 하고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공무원의 품위를 지키는 길인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진정으로 학생과 학교를 위하는 길인지를 다시 한번 되새겼으면 합니다."

"교장선생님, 여쭤볼 게 있습니다."

이번엔 또 무슨 용건이냐는 듯 교장은 인상을 잔뜩 구겼다. 이미 불만이 많은 교사로 낙인이 찍힌 이상 하 선생으로서는 한 마디 더 보탠다고 해서 손해 볼 것도 없었다.

"비밀이라는 것의 범위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설명이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 모양이지요? 좋습니다. 이렇게 정의하지요. 학교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외부에 알려져선 안 됩니다. 답변이 됐습니까?"

"누가 보더라도 이치에 맞는 일이라면 굳이 숨겨야 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닙니까? 학교라는 곳은 개방된 사회여야 합니다. 폐쇄된 집단일수록 숨기는 일이 많아지는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뭔가 켕기는 구석이 있는 집단일수록, 또 그런 집단에 소속된 사람일수록 무엇이든 숨기는 법이니까요."

"이것 보세요, 하 선생님! 학교는 저마다 다른 욕구를 가진 학부모들을 상대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공통점은 하나 있지요. 어떤 일이 생기든 자기 아이에게 불이익이 생기는 것은 결코 용납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즉 다른 아이들이야 어떤 상황에 처하든 자기 아이만 이득이 된다면 그 어떤 불합리한 것도 너그럽게 이해하는 것이 학부모의 특성이라는 겁니다. 아마 다들 한 번쯤은 경험해 보셨을 줄 압니다. 그런데 그런 이기적인 학부모들에게 필요 이상의 정보가 제공되었을 때, 그 정보가 자기 아이에게 불이익을 줄 거라고 판단된다면, 과연 그게 학부모에게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생각해 봤습니까? 쓸데없이 분란만 일으켜 학교를 곤란하게 만들게 될 거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 아닐까요?"

하 선생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제 그 정도면 됐다는 듯 옆 자리에 앉아 있던 학년 부장 선생이 팔을 붙들었다.

“아이들의 교육과는 전혀 상관없는 누군가의 불순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 아닌가요? 또 그런 우리의 행동들이 학부모들에게 조금이라도 빌미를 제공하게 될까 봐 그러는 게 아닌가요?"

일시에 좌중이 술렁거렸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것이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요?"

교감이 던진 한 마디 말을 신호로 웅성거리던 소리가 묻혀 버렸다.

“교감선생님, 그건 아니지요. 이 자리는 그 어떤 얘기라도 할 수 있는 자리 아닙니까?"

“아, 예. 죄송합니다."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막상 교장이 말은 그렇게 했어도 교감이 한 말이 곧 교장의 뜻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다. 어서 회의를 마치고 이 자리를 벗어나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표정들이 역력했다. 더는 이런 골치 아픈 일에 휘말려 들고 싶지도 않고 일이야 어떻게 돌아가든 모르쇠로 밀고 가겠다는 뜻이겠다.


어떤 집단이든 내부의 비리나 불합리한 면은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교직 사회는 어떻게든 숨기려 든다. 그냥 알고도 모르는 척 모두가 쉬쉬하는 게 이미 관행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저 자기 털끝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뭐가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다는 게 바로 이 교직 사회였다. 당장 자신에게 돌아오게 될 불편함, 어려움, 피해 따위를 감당할 자신이 없고,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다는 의미였다.

불합리한 것을 좀처럼 자각하지 못하는 사회, 심지어 알고도 자정 능력이나 개선의 의지라고는 보이지 않는 사회에게 그 어떤 발전이라도 기대할 순 없는 일이었다. 물론 그건 한두 사람이 발버둥 친다고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었다.


다소 비겁한 방법이긴 해도 이럴 때에는 바깥에서 역으로 치고 들어오는 방법이 의외로 효과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 선생은 도교육청 민원실에 접속하여 그동안 일어났던 일에 대해 글을 작성했다. 너무 장황하지 않게 적으면서도 담아야 할 내용은 모두 담았다. 분명 조만간 어떤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고 하 선생은 믿었다. 교장에게 어떤 시정 조치가 내려올 수도 있을 테고, 사안에 따라서는 그들에게 징계가 내려질지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곳은 학교와는 다른 곳일 거라고 믿었다.




아무도 모르게 도교육청에 민원을 올리고 나서 사흘쯤 지났을 때였다. 물론 읽는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았고, 심지어 민원에 대한 아무런 답글도 달리지 않았다.

마치 쓰나미가 몰려오기 직전처럼 모든 게 정적에 휩싸인 것 같았다. 불만은 쏟아내기 위해 있는 것이라지만 정작 공무원 사회에서의 불만은 안으로 삭여야 한다고 들었다.

자체적으로 해결하려 노력해도 풀리지 않는다면 외부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 윤정의 말대로 고립이 두렵기는 했다. 그래도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는 건 없을 것 같았다.


아이들을 집에 보내고 교장실 옆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출입문 위의 열린 작은 창문을 통해 분개한 듯 들리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버러지 같은 자식! 독사 같은 놈! 감히 우릴 고발해? 그것도 새파랗게 어린놈의 새끼가…….”

“진정하십시오, 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 이게 지금 진정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까?”

“저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될 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그만큼 제가 주의를 줬는데도 이런 무모한 짓을 하는 걸 보면 그놈도 참 돼먹지 않은 놈입니다.”

화를 내봤자 교장만 손해라며 교감은 연신 교장을 달랬다.

“교감선생님 말이 맞는 것 같군요. 길길이 날뛰어 봤자 우리만 손해겠지요.”

문을 열어보나 마나 안에서 어떤 장면이 연출되고 있는지 알 만했다. 백번 지당하신 말씀이라며 옆에 서서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을 교감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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