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이 발견되고도 열흘 가까이 흘렀다. 여전히 조금은 미심쩍은 감이 있었지만, 애완견을 산책시키던 60대의 남성이 시신을 발견한 최초의 신고자였다. 누가 생각해도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비가 오는 저녁에, 그것도 개를 산책시키러 나왔다는 걸 보면 정상적인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마치 그걸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주변 사람들은 죄다 그를 미친 사람으로 취급한다고 했다.
아무튼 그 남자의 말에 의하면 보통은 그러지 않는데, 그날따라 개가 우거진 풀숲으로 들어가더라고 했다. 얼마 후 숲에서 빠져나온 개의 입에는 핸드백이 물려 있었다. 백에는 관심이 없는 남자가 보기에도 선명하게 로고가 찍힌 소위 명품백이었다. 처음엔 누군가가 그냥 잃어버린 건가 싶었는데, 산책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뭔가가 찜찜한 구석이 있어서 풀숲에 들어갔다가 시신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했다. 물론 여기에서도 남자는 충분히 의심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한 셈이었다. 조금도 빗줄기가 잦아들지 않았던 그때에 우산을 든 채 풀숲으로 들어갔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마치 그곳에 시신이 있음을 알고 있다는 것처럼 보일 만했다.
신고를 받자마자 달려간 성주와 영석은 지금껏 그만큼 참혹하게 훼손된 시신을 본 적이 없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어도 시신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걸 알리는 법이라고 했다. 어떤 억울한 일을 당해 목숨을 빼앗겼지만, 어떤 식으로든 시신에 범행의 흔적이나 증거를 남긴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번 시신은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현장에 출동했던 과학수사 요원들은 족히 반년은 넘은 시신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훼손된 시신이었다. 게다가 손가락 열 개의 첫마디는 죄다 잘려 나가 있었다. 그 말은 곧 지문을 통한 신원 수색이 불가하다는 얘기이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매우 예리한 칼 같은 걸로 두 손의 손바닥 피부를 절개해 누군가가 가져갔다. 당연히 범인이 가져갔을 것이다. 어쨌거나 장문, 즉 손바닥에서 채취할 수 있는 지문 복원도 불가하다는 얘기였다.
고인에게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범인이 얼굴을 직접적으로 훼손한 건 아닐 거라고 했다. 이미 사망한 뒤에 짐승들이 뜯어먹어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
인근의 가장 가까운 도시와 대략 10km 정도 떨어진 곳이긴 해도 그래도 사건 현장은 명색이 읍행정복지센터가 있는 지역이었다. 그런 곳에 시체를 뜯어먹을 만한 짐승이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이미 맨 처음 시신을 대면했었던 성주나 영석이 육안으로 보기에도 틀림없는 여성으로 짐작되었다. 개가 물고 나왔다는 명품백은 일반적으로 여자가 가장 많이 들고 다니는 것들 중의 하나였다. 게다가 주변에 흩어져 있는 속옷만 봐도 피해자가 여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수많은 시신을 봐 온 성주의 육감으로도 체형을 고려했을 때 여자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나신이었다. 신원을 추정하려면 시간은 더 소요되리라 했다. 과학수사 요원들의 말에 의하면 골반의 벌어진 정도와 크기로 봤을 때 아직 출산을 하지 않은 여자, 즉 미혼의 젊은 여성일 확률이 매우 높다고 했다.
원래 사람들은 자기 일이 아니라면 입을 대기 쉬운 법이다. 산책을 다니던 개 몇 마리가 간혹 고깃덩이 같은 걸 물어오며 요란하게 짖을 때에도 사람들은 그저 쥐나 고양이 따위의 사체가 아닐까 생각했지, 자기 애완견의 주둥이에 걸린 고깃덩이가 인육일 거라고는 꿈에서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최근 6개월 동안 무려 열일곱 차례나 비가 왔다고 했다. 그중에 다섯 번은 거의 시신을 발견한 그날과 맞먹을 만큼의 비가 내렸다. 사건 현장이 경사진 곳에 위치해 있어서 범인을 특정할 만한 흔적이나 증거들이 씻겨 내려갔을 것이다.
처음 며칠 동안은 사람이 죽었다고 해도 주변 사람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목격자를 찾는 과정에서 신원은 알 수 없으나 미혼의 여성이 피해자라고 했더니 사람들은 구름 떼처럼 몰려들었다.
호기심 때문이란 걸 모르지 않는다 해도 뭐 하나 건져갈 거라도 있는지 대여섯 살짜리 아이의 손을 잡고 나타나던 개념 없는 여자도 있었고, 더러는 주변을 샅샅이 수색하던 경찰에게 말을 건네던 중고등학생도 있었다.
"아저씨, 여기에서 사람 죽은 거 맞아요? 와, 그동안 그렇게 지나다니면서 왜 그걸 몰랐지?"
그건 정작 성주가 몰려든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었다.
'이렇게 가까운 데서 사람이 죽었는데, 그것도 족히 반년이 넘었을 거라는데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이 아무도 모를 수가 있죠?'
수사통제선 근처를 기웃거리다 금세 넘어올 듯 알짱대는 녀석이 거슬렸던 영석은 냅다 소리를 질렀다.
"야! 이런 데는 함부로 오는 게 아냐. 얼른 집에 가서 공부나 해. 이놈들아!"
머리에 아직 피도 안 마른 것들이 뭐라고 구시렁대며 사라졌다. 마음 같아선 불러서 된통 혼이라도 낼까 싶었지만 무더운 날씨에 그럴 마음도 달아났다.
"장 형사님! 범인은 반드시 사건 현장에 돌아온다는 속설이 있죠?"
묵묵히 주변을 뒤지던 영석이 입을 열었다.
"뭐야, 그 얘기는? 저런 녀석들 중에 범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야?"
"장 형사님도 알잖아요. 요즘 아이들이 아무 생각 없으면서도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말이에요. 제가 보기엔 범인이 저렇게 어린 녀석이라고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하긴 듣고 보면 영석의 말에 전혀 일리가 없는 건 아니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범인을 검거했던 경험만 봐도 그랬다. 대체로 성인 살인범은 그래도 어떤 이유가 있어서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범인이 어리면 어릴수록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죽였다거나 사람을 죽인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궁금해 죽였다는 말을 태연하게 내뱉곤 했다.
그러던 차에 시신의 얼굴 원형 복원 결과가 나왔다. 그럴싸한 확률에 기댄 추정치라고 해도 복원된 결과를 받아든 수사 관계자들은 희생자가 예뻐도 너무 예쁘다고 했다. 이 정도 되는 미모를 가지고 그 밤길을 돌아다녔다면 누구라도 표적으로 삼았을지도 모르겠다는 문제 있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고 할 정도였다.
누군가는 한창 잘 나가는 주말연속극의 여주인공이 울고 갈 인물이라고 했다. 아마 살아있었다면 이만큼 미모가 뛰어난 여자는 어지간해서는 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고 했다. 만약 성주도 사진을 보지 않았다면 그 말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성주의 생각 또한 그들과 한 치의 오차가 없었다.
일단 성주는 복원된 몽타주를 보고 한시름 놓았다. 이쁘면 모든 게 용서되는 세상이라지 않은가? 성인지 감수성이 어쩌니 저쩌니 해도 모든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건 변하지 않는 법이다. 적어도 피해자가 이만한 미모의 소유자라면 수사 과정에서의 사람들의 무관심이나 비협조 따위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