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작이 Nov 05. 2024

목격자

#3.

역시 예상한 대로였다. 피해자의 몽타주를 본 사건 현장 주변의 사람들은 정확히 두 가지만 말할 뿐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 어느 누구도 이렇게 생긴 여자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피해자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는 게 없지만, 최소한 이 지역 혹은 근처에 사는 사람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더군다나 너무 예쁘게 생긴 사람인데 어떻게 그런 몹쓸 짓을 당했냐며 혀를 차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수사 관계자들도 그렇게 말할 정도인데, 일반인이 그러는 건 사실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최소한 성폭행을 당한 뒤에 사망했다는 검시 결과가 있기는 하지만, 마치 그들은 그걸 두 눈으로 본 듯 말했다. 저렇게 예쁜데 어쩌면 그렇게 참혹하게 죽을 수 있느냐며 쓸데없는 감정이입까지 할 정도였다.

'뭐라고요? 그러면 못 생겨서 저렇게 죽게 되면 그 사람은 덜 불쌍하다는 거예요?'

목격자 확보가 수사의 큰 방향 중 하나인 입장에서, 혹시라도 어떤 식으로든 피해자와의 연결 고리 찾기에 혈안이 된 성주로선 그런 생각도 내비칠 수 없었다.


몽타주가 나왔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신원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성주는 뭔가 된통 얻어걸린 게 아닐까 싶었다.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수사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마침 그때 오래전 성주가 신입이었을 때 자신의 사수였던 박 형사의 말이 생각났다.

"사건이 제자리를 맴돌 때에는 몇 번이고 현장에 가봐야 한다. 그곳에서 만약 내가 범인이라면 어떤 마음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범행했을지를 상상해 봐라."

사실 그의 말은 성주에게 하나의 교본과도 같았다.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녀도 보람이라고는 없던 강력계 형사 생활을 줄곧 이어 가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박 형사 덕분이었다. 함께 쫓던 흉악범의 칼에 희생되지 않았더라면 성주가 지금까지 이 짓을 하고 돌아다닐 일도 없었다. 결국 그놈을 자신의 손으로 잡아 처넣은 뒤부터 마치 사명감을 가지고 태어난 듯 앞만 보고 달려온 성주였다.


박 형사의 말대로 성주는 오후 느지막이 사건 현장을 찾았다. 아무리 시골 읍 지역이라지만 건너편의 이천 여 세대에 가까운 대단지 아파트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건 현장은 온통 덤불밖에 보이지 않았다. 해가 떨어지면 차를 타지 않고는 이곳을 지나다니지 않는다고 했다. 어지간해선 걸어서 여기를 지나는 사람은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어떻게 된 게 그 흔한 CCTV 하나 없었다. 마치 줄자로 잰 듯 400미터 간격으로 들어선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두 곳에만 설치되어 있을 뿐이었다. 물론 사건 현장에서 더 가까운 초등학교도 200미터나 떨어져 있어 수거한 16대의 CCTV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영석을 이곳으로 오라고 했으니 올 때까지 성주는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얼핏 봐도 지나다니는 차라고는 죄다 자가용뿐이었다. 더러 덤프트럭도 보이긴 했다. 성주는 버스는커녕 그 흔한 택시 한 대도 보이지 않는다는 게 의문스러웠다.

“이런 곳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 수가 있지?”

이렇게 외진 곳에 사는 사람들이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지 않을 리가 없을 터였다. 인근 편의점에 물어보니 그나마 읍내를 왕복하는 몇 대의 버스가 대략 한 시간 간격으로 드나드는 곳이라고 했다. 택시는 거의 대부분이 콜 시스템으로 운행되는 관계로 대로변에 서 있어 봤자 지나가는 택시를 잡을 확률은 거의 제로라고 했다.

며칠 전 영석이 버스 회사에 문의했을 때에도 하루에 스물한 대의 버스가 읍내에서 인근 K시(市)로 운행하고 있다는 정도만 알아냈을 뿐이었다. 마찬가지로 K시에서 읍내로 이동하는 버스도 스물한 대였다. 총 마흔두 대의 버스가 이곳을 지난다는 얘기였다. 배차 간격이 가장 짧을 때에는 37분, 가장 긴 경우에는 무려 1시간 25분이었다. 그 말은 곧 1시간 정도는 충분히 사람들의 왕래가 뜸한 게 지극히 당연하다는 뜻이다. 게다가 읍내로 향하는 버스가 이곳을 지나는 시각은 대략 10시 45분, 반대로 읍내에서 K시로 가는 막차는 10시 직전에 이곳을 지나간다. 결국 최소한 10시 45분 이후로는 이 일대가 거의 암흑 천지가 된다는 얘기였다. 대중교통으로 왕래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그만큼 불편한 곳이 이곳이었다. 물론 위험한 곳이기도 했다.


사정이 그렇다면 사람들은 아무래도 버스보다는 자동차를 이용해 이동하기 마련이다. 자동차를 이용하면 대체로 주위가 분산될 수밖에 없다. 뭔가 좀 이상한 낌새가 있다고 해도 굳이 차를 세우고 두 눈으로 확인하는 사람은 드문 법이다. 결국 믿을 만한 목격자는 도보로 이동 중이거나 현장과 가까운 곳에서 상가를 운영하는 점주들뿐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마치 거짓말처럼 사건 현장이 일어난 쪽은 상가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그나마 있는 상가는 왕복 4차선 도로에 인접한 곳에만 있었고, 전체 상가의 90%에 가까운 가게들은 모두 아파트 단지가 있는 쪽에만 들어서 있었다.


문제의 대단지 아파트는 불과 십여 년 전에 일대를 재개발하면서 들어섰다. 원래의 지형의 모양을 그대로 살려 지은 탓에 전체적으로 경사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가장 아래에 있는 1단지에서 고지대에 있는 3단지까지 1km 남짓한 길을 따라 늘어선 아파트였다. 적게는 삼사 천 명에서 많으면 족히 그 배가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살게 되었으면 버스 편이 더 늘어나야 하는 게 일반적이겠지만, 어쩐 일인지 이곳은 아파트가 들어선 이후로 버스 편이 절반으로 축소되어 운행된다고 했다.

“요즘 누가 버스를 타고 다녀요? 세 걸음만 걸어도 차를 몰고 다니는 세상이잖아요.”

편의점 주인의 말을 들어보면 충분히 일리가 있는 얘기였다. 하긴 아파트 단지에 사는 사람들이 차가 없을 리는 없었다.

그러면 여기는 걸어서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나요?”

“아마 그렇다고 보시면 될 겁니다. 혹시 저 건너편에  곳의 학교가 있다는  알고 계시죠? 거기 다니는 애들은 종종 걸어 다니곤 해요. 그런데 그나마 요즘은 그것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어요. 그 사건이 있고부터는 부모들이 일일이 차에 태우고 다니니까요.”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편의점이었다. 비교적 높은 지대에 있긴 하지만, 사건 현장까지 직선거리로만 어림잡아 4백 미터는 되는 데다 중간에 크고 작은 풀숲이 세 곳이나 있어서 육안으로는 그 어떤 것도 볼 수 없는 구조였다. 안 그래도 오고 가는 차량들 덕분에 설령 피해자가 비명을 지른다고 해도 들을 만한 사람이 없어 보였다. 게다가 어쩌면 사건 당일에도 많은 비가 내렸을 가능성이 높았다. 사망 추정 시기를 즈음하여 시신을 발견하던 날처럼 폭우가 쏟아진 날이 사흘쯤 된다는 건 이미 기상청을 통해 확인했다.

편의점 점주에게서도 딱히 건질 만한 얘기는 없었다. 성주는 탐문 수사에 이렇게 진척이 없는 경우를 본 게 언제였나 싶었다. 차가 막혀 조금 늦을 것 같다는 이 형사의 문자메시지를 확인한 성주는 편의점을 나오자마자 애꿎게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어쩐 일인지 이번 사건이 장기화되거나 미제로 남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거의 확신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성주를 답답하게 만드는 건 그 어디에서도 목격자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