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같아선 현수막이라도 내걸고 싶었다. 이 일대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탐문한 건 아니었으니 현수막을 내걸면 새로운 제보가 들어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론 성주가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일단 서(署)에 들어가는 대로 팀장에게 요청해 볼 생각이다.
성주가 와서 주변을 둘러보는 동안 못 해도 한 시간은 흘러갔다. 그런데 걸어서 지나가는 사람을 본 게 손에 꼽을 정도였다. 본 사람은 모두 차를 타고 이동했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차를 타고 와서 편의점에 들어가 물건을 샀다. 구매가 끝나면 곧장 차를 타고 아파트로 이동했다. 그런 게 아마 직업병인지도 모르겠다. 성주는 안 보는 척하면서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을 관찰했다. 어찌 되었건 간에 사건이 발생하면 주변 사람들은 으레 잠재적 범인이 되는 셈이다. 적어도 탐문 수사 중이라면 마주치는 누구라도 허투루 볼 수 없다. 더러 행색이 수상해 보이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사람을 겉만 보고 쉽게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나 이 일이 그렇다. 오래 몸담고 하다 보면 거의 자동적으로 사람을 위아래로 훑어보게 된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처음 본 인상이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기도 한다. 사건 해결에 별 다른 진척이 없을 때 그런 사람들의 주변을 파헤치다 보면 의외의 단서가 나올 때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번 사건만큼은 아직 그런 사람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정이 그렇다고 해도 현재 상황에선 지나가는 아무나 덜컥 붙잡고 물어볼 수도 없다.
참 묘한 건 어떤 식으로든 사람을 보려면 사건 현장이 아닌 아파트 단지가 있는 맞은편으로 건너와야 한다는 점이었다. 정작 사건이 일어난 곳 주변에선 어지간해서는 사람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장 형사님! 여기 완전히 골 때리는 곳이네요. 어떻게 된 게 이 벌건 대낮에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을 수가 있죠?”
“어, 이 형사 왔어? 안 그래도 나도 그것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중이야.”
영석이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나타났다. “아무리 봐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사건으로 보이지 않네요.”
“그래, 나도 그런 불길한 예감이 들어. 다른 건 몰라도 목격자 찾는 건 포기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어.”
어찌 된 일인지 그 흔한 거짓 제보 하나 들어오지 않았다.
"뭐 어찌 되었건 간에 우린 우리 할 일을 해야 하지 않겠어. 이왕 왔으니 일단 한 번 둘러보자고. 사건 현장을 잘 알아놓아야 사건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이미 몇 차례나 둘러본 뒤였다. 마치 손바닥 안을 들여다볼 정도로 훤하게 익혔지만, 혹시 미처 못 보고 지나친 곳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꽤 큰 공장이 하나 들어선 게 눈에 띄었다.
"그런데 장 형사, 저긴 뭐 하는 데지?"
"아, 모르셨어요? 새마을산업 주식회사라고 이곳의 한 독지가가 25년 전에 세운 공장이라고 하더군요. 저 건너편 아파트 단지에 사는 사람들의 상당수도 저기에서 일한다고 해요."
"새마을 산업이라...... 그러면 저 공장이 여기를 이만큼 개발했다는 뜻인가?"
"사람들 말로는 이 일대의 경제 전반을 책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그래서인지 지역에선 누구도 창업자를 무시할 수 없다고 하던데요. 왜요? 뭔가가 께름칙하지 않으세요?"
"그냥 기우였으면 좋겠지만, 어쩌면 저렇게 흉물스럽게 자리 잡은 형세가 영 눈에 거슬리네."
늘 그랬다. 불길한 예감은 빗나간 적이 없었고, 묘하게도 불길한 그 구석을 파고들다 보면 사건을 해결할 때도 있었다.
사건 현장 주변의 전체적인 지형은 긴 직사각형 네 개를 떠올리면 된다. 대로변을 경계로 각각 서로 마주 보며 두 개씩의 직사각형 모양의 지형이 위치해 있다. 사건 현장에서 육백 미터쯤 내려가면 작은 네 거리가 나오는데, 그 네 거리를 기준으로 해서 또 다른 두 개의 직사각형 모양의 지형이 있다. 그렇게 해서 모두 네 구역으로 나눠진 셈이다. 작은 네 거리 너머에 있는 땅은 앞선 두 개의 것보다는 세로의 길이가 짧은 직사각형의 지형이었다.
그 직사각형의 틀 속에 스물여섯 군데의 또 다른 작은 직사각형의 지형들이 있다. 말이 작다는 것이지 실제로 가로가 족히 사십 미터, 세로가 백 여 미터에 가까운 것도 있을 정도였다. 엄연히 땅의 주인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이곳은 어찌 된 일인지 작은 풀숲으로 조성된 곳이었다. 처음부터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이 아니었다. 인근의 부동산 중개업자의 말을 들어 보면 조만간 몇몇 건물들이 들어설 예정이라고는 하지만, 지금까지는 빈터로 남아 있었고 그 빈터에 자연스레 풀숲이 들어서고 만 것이었다. 물론 그 풀숲 속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지는 들어가 보지 않은 이상은 알 도리가 없었다.
풀숲이 있는 지형을 벗어나 대로변으로 나오면 총 네 군데의 버스정류장이 있었다. 직사각형의 풀숲 지형을 지나가지 않으려면 이 버스정류장을 따라서 아파트 단지 쪽으로 가면 된다. 차도를 기준으로 했을 때 인도를 따라가면 불빛이 환한 아파트 단지로 연결되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모두가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간다. 간혹 단지 반대편으로 이동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의 대부분은 몇 안 되는 상가에 가는 게 목적이거나 앞에서 말했던 새마을산업주식회사를 드나드는 사람들이었다. 유독 그곳만 사람들과 차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었다.
결과적으로 사건이 일어난 곳으로 이동하는 사람이 어지간해선 없다는 얘기가 된다. 주변 상인들의 말을 따르자면 못해도 서너 명씩은 버스가 태우고 가면 갔지, 비어 있는 채로 가는 건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단순하게 계산만 해 봐도 족히 이백 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차를 타고 이동했다는 얘기가 된다. 문제는 사건 현장과 가까운 네 곳의 버스정류소에 과연 몇 명의 사람이 내렸겠느냐는 것이다. 일단 버스 회사에 연락해 CCTV를 확보해야 할 것 같았다.
“장 형사님! 이렇게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아무도 모른다는 게 여전히 이해가 안 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볼수록 그럴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십여 년 가까이 영석이 사수로 대하고 있는 성주도 일찌감치 든 의문이었다. 수시로 드나들던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들도 알지 못했다. 그건 버스에서 내려 이동하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섭씨 36도를 오르내리고 금방이라도 살갗을 태울 듯 쏟아지던 햇빛을 피하기에 급급했지, 그들이 서서 버스를 기다리던 곳에서 고작 삼사십 미터 떨어진 작은 풀숲 한가운데에 그런 엄청난 것이 인적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들로서도 알 리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