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현장을 볼 때는 으레 위에서 한눈에 조감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람의 시야로 파악하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넓은 공간을 어떻게 육안으로 파악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군데군데 보이는 풀숲으로 이루어진 사각형 모양의 지형들 중의 한 곳에서 시신이 발견되었다. 만일의 경우 똑같이 생긴 저 많은 사각형 모양의 땅을 다 뒤져야 할 수도 있었다.
드론을 띄우자고 성주가 먼저 강력하게 서에 요청했다. 사건 현장의 지리적 특성을 감안한 수사과장은 흔쾌히 동의했다.사실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그간의 탐문 수사 결과를 보고했을 때에도 수사과장은 가장 먼저 미제사건으로 남을 가능성을 우려했다.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똑같은 사건 현장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본 현장과 상공에서 조망한 그것은 전혀 다른 느낌을 갖게 했다. 뭐랄까, 현장 주변은 거대한 하나의 바둑판같았다.그냥 일반적인바둑판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되는 모양이었다.바둑판엔 수많은 작은 정사각형들이 밀집해 있다. 그들을 각각 구분하는 선들이 있고, 그 선들이 서로 교차하는 곳에 돌을 놓는다.
드론이 바로 그걸 알려 준 셈이었다. 그 말은 곧 지나칠 정도로 유사해 보이는 이 지형들 때문에 사건이 미궁으로 빠질 우려가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여기에서 사각형이 빽빽이 들어선 작은 수풀 공간이라면 그 사각형을 만들어 내는 선 위를 사람들과 차가 지나다니게 되는 꼴이었다. 그리고 그 수많은 선들의 교차지점 중 한 곳에 성주와 영석이 버티고 서 있었다.
사체가 토막 난 사건이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누군가에 의해 훼손된 사건이라면 대개 인적이 드물고 음습한 곳에서 발생하는 법이다. 사건 현장을 본 성주와 영석의 첫 느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이런 장소라면 그와 같은 사건이 일어나고도 남을 만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범죄가 일어날 만한 특화된 장소가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장 형사님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시군요. 도대체 어떤 놈의 소행일까요?"
"뭐 지금으로선 뻔한 소리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아. 이 주변을 아주 잘 아는 놈의 소행이겠지. 언제쯤 이곳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는지, 또 인적이 뜸해질 때가 언제인지, 게다가지나가는 사람에게 범행을 저지르려면 어디에 숨어 있어야 할지 알고 있는 놈이겠지."
"어떻게 생겨 먹은 놈인지 그 얼굴이라도 한 번 봤으면 좋겠네요."
"놈은 잔인하고 대범하다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할 것 같아. 어쩌면 악마가 환생한 것인지도 모르지."
영석은 성주의 말에 별다른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열 손가락의 첫 번째 마디와 손바닥의 피부까지 절취해 간 것만 봐도 그런 생각이 들 만했다.
"설마 미성년자의 소행은 아니겠죠?"
"일단은 나도 그렇게 생각해. 범행의 수법으로 봐선 도무지 어린 녀석이 저지른 걸로 보이지 않아. 아무리 요즘 애들이 영악해도 그렇지, 그렇게까지 사악한 아이가 있을까 싶거든."
악마의 환생을 운운하는 성주의 입장도 사실은 그랬다. 어지간해서는 이렇게까지 잔인하게 범행을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상대방을 죽이는 게 목적이었다면 범인은 나가도 한참 더 나간 셈이었다.
"김 형사는 이 살인의 동기가 뭐라고 생각해?"
대체로 살인의 동기는 세 가지로 집약된다. 원한 관계, 치정 관계, 아니면 금전과 얽힌 관계 등에서 살인이 일어난다. 성주의 질문을 받은 영석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글쎄요. 아직 서른도 채 안 된 저렇게 아리따운 여자가 무슨 그런 큰 원한 관계를 가진 사람이 있을까 싶은 의문이 들어요. 더군다나 금전적으로도 그렇게 궁해 보이는 사람은 아닌 듯하고요."
"그러면 자네는 이 사건이 치정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본다는 말이군."
"제가 봤을 때에는 그럴 가능성이 가장 높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얼마 전에 TV에서 수사전문가인 어떤 사람이 나와서 떠드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온 양반도 그런 말을 하더군요. 잔혹하게 사체를 훼손한 범행의 90%는 치정 관계에서 촉발된 범인의 소행이라고 말이에요."
치정이라면 일반적인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포함한 온갖 다양한 감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관계를 말한다. 가깝게는 연인이나 부부관계에서 멀게는 정부 관계, 심지어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아닌 친구관계에서도 심리적인 의존도가 격해지면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관계를 말한다.
"좋아. 그렇다면 다양한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보자고. 만약 피해자가 누군가의 내연의 처였다면 범인은 그녀의 정부일 가능성이 크겠지? 피해자가 자신의 정부에게 이혼을 종용하거나 금전적인 보상을 요구하면서 어떤 식으로든 압박해 왔다면 그걸 못 견딘 남자가 여자를 제거했을 수도 있겠지."
"그 남자의 입장에선 자신의 범행인 게 밝혀지면 모든 걸 잃을 테니 저렇게 잔인하게 범행을 한 것도 설명이 되고 말이죠."
"그런데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었을까? 만약 나였다면 여자를 죽이느니 차라리 이혼을 선택했을 것 같은데……."
섣부른 단정은 사건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경계해야 할 일이지만, 모종의 확신이 있어야 수사의 방향을 잡을 수 있게 된다. 뜬구름 잡는 듯한 망상처럼 보여도 이번 사건처럼 용의자 하나 떠오르지 않는 사건은, 게다가 목격자도 없는 사건이라면 더더욱 이런 과정이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그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좋아, 그렇다면 이건 어때? 저 피해자가 바람을 피우는 어떤 남자의 부인이라고 가정해 보자고. 그렇다면 그 경우엔 내연의 차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을까?"
"내연의 처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남자를 가로채길 원한다면 범행의 동기는 성립하겠죠."
"그런데 뭐가 답답해서 사람을 저 지경으로 만들면서까지 배우자가 있는 남자를 뺏으려고 할까? 가정이 있는 한 남자의 매력을 얻을 정도라면 굳이 이런 무리수를 써지 않더라도 주변에서 충분히 자기 인연을 찾을 수 있을 텐데 말이야."
"혹시 본처에 대한 질투심이 여자의 눈을 멀게 한 게 아닐까요?"
영석의 말에 성주는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걸 봤거나 혹은 증거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 추적을 해 보니 상대자가 자신보다 못한 사람이었다. 도무지 받아들일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인물이 빠지는 것도 아니고 저렇게 미모가 빼어난데도 남편이 딴 짓을 하고 있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자는 자기의 남편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둘을 갈라놓으려고 애를 써 보지만 여의치가 않다. 그런데 그 위기감은 본처를 본 내연의 처에게도 생기고 말았다. 그 정도의 미모를 가진 본처에게 내연의 처가 이길 승산은 없어 보인다. 어쩌면 여자는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얼굴이라도 조금 상하게만 하려는 의도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살인이 일어나고 만다.
뭔가가 석연치 않았다. 그러기 위해서 굳이 이렇게 음침한 곳에서 여자 혼자의 몸으로 한참을 숨어 있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피해자를 어떻게든 이곳으로 유인해야 했을 텐데, 그런다고 해서 피해자가 여기에 와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한 가지 더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과학 수사는 피해자가 분명 성폭행을 당한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면 성폭행을 저지른 또 다른 누군가, 즉 정체불명의 남성까지 가세한 상태라야 했다. 본처와, 그녀가 아는 누군가가 합세해 피해자를 죽인다. 그렇다면 범행에 협조한 남성은 본처에 대한 감정이 어떤 것이기에 성폭행을 벌이는 것도 모자라 살인까지 방조할 정도가 될까 싶었다. 게다가 어쩌면 사체를 훼손하는 데 힘을 보탰는지도 모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