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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Nov 05. 2024

늘 똑같은 길

사백 마흔네 번째 글: 다른 길은 없을 겁니다.

왜관역에서 학교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읍내를 벗어나자마자 1분쯤 신도로로 달리는가 싶더니 이내 구도로로 차가 들어섭니다. 택시나 자가용들은 죄다 신도로로 달려갑니다. 더러 신호등이 있긴 해도 거의 준고속도로에 버금갈 정도로 도로 상태가 좋습니다.


차가 구도로로 접어들면 그때부터 낯익은 풍경들이 마음을 편하게 합니다. 곳곳에 버스정류장 표지판이 서 있고, 작은 도로변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신작로가 드문드문 보입니다. 바닥에는 여기저기에 과속방지턱이 박혀 있어 제대로 속도를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신도로로 달리면 10분도 안 걸릴 길이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시간이 소요됩니다.


지금 왕복 2차선의 조용한 시골길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비교적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냄새랄까요, 시골의 한적한 풍경이 두 눈 속에 아로새겨집니다. 보이는 사람들이라고는 버스를 타려고 나와 선 이들이 전부입니다. 죄다 연로한 분들만 눈에 띕니다.


얼핏 지나가기만 해도 시골에 젊은 사람이 없다는 걸 확연히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언제부터 젊은 사람들이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는지를 따지는 건 이젠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다 못해 버스 승객들 중에서도 이미 쉰 살을 넘어서 버린 제가 가장 젊은 축에 속할 정도니까요.


버스의 앞문과 뒷문이 수시로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합니다. 이름도 모르고 어떤 분인지도 모르지만, 낯익은 분들이 더러 차에 오르거나 내리곤 합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이 시골 풍경의 한컷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도시에서 와서 이 촌에서 직장생활을 하기 위해 매일 버스에 오르고 내리는 저를 보며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여러 마을들을 지나고 있어서겠지요? 버스는 속이 터질 만큼 느리게 달립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 느림 속에 온전히 저를 맡길 수 있습니다. 10분가량 그렇게 달리는 그 길이 그래서 전 더욱 좋습니다. 섰다 달렸다 섰다 달렸다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조급해질 이유는 없습니다. 학교에 지각만 하지 않는다면 더러 천천히 가도 여유롭기만 할 뿐입니다.


속도는 느려도 저는 달리고 있는 구도로가 좋습니다. 눈을 감아도 어디쯤 왔는지 훤하게 있습니다. 더는 새로운 풍경이랄 것도 없으나, 물씬 정감이 느껴지는 이곳입니다. 어쩌면 이게 좋아서 매일 저는 이 똑같은 길을 아무런 불평 없이 오고 가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늘 똑같은 길이라고 해서 제게 늘 똑같은 감흥을 주는 건 분명 아닌 듯합니다. 어제는 어떤 하나의 생각이 들었다면 오늘은 어제와는 또 다른 생각을 하며 버스에 앉아 있습니다. 그저께는 책을 펼쳐 들고 몇 쪽이라도 읽었다면 어제는 하루를 혹은 한 주간을 어떻게 보낼지 생각했고, 오늘은 이렇게 짤막하나마 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늘 똑같은 길을 매일같이 오고 가지 않는다면 이 어찌 누릴 수 있는 호사이겠습니까?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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