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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Nov 06. 2024

시낭송 평가

0878

세기는 이야기하기와 정반대다


철학자 한병철은 그가 2년 전에 쓴 <관조하는 삶 Vita contemplativa:무위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말한다 수들은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수들은 의미의 정점에 거주한다


현재의 시낭송 평가는 수적數的이다


원문과 대조하기로 심사표를 가득 채우고 그 개수의 비교로 낭송의 우열을 나눈다 예술점수와 기술점수라는 구태가 만연하다(초기에는 그럴듯한 기준이었으나 여러 한계점이 드러나 폐기한 방식이다) 액션에 포인트를 부여하는 것은 피겨스케이팅 같은 스포츠에나 적용하는 것이 옳다


숫자세기는 정보로 이해하고 있다는 걸 뜻한다


정보에는 이야기가 깃들 자리가 없다


시를 온전히 자신의 가슴으로 흡수하기보다 무수한 낭송들이 시의 이해를 분석된 정보에 기대고 있다


비근한 예로 윤동주가 필사하며 백석의 걸작이라고  극찬한 '모닥불'을 민족의 화합으로 보는 것은 국문학자가 할 일이지 낭송가가 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낭송은 쓰인 그 시절을 넘어 정보를 찢고 지금의 이야기를 창조해야 한다


혹 변별력이 염려된다면 감동과 공감의 크기로도 가늠할 수 있다


심사위원들의 기득권만 내려놓으면 해결된다


경험으로 무장된 철 지난 마인드의 시낭송 지도자나 하나의 패턴에 사로잡혀 화석화된 시낭송가들의 평가를 더 이상 믿지 않아야 한다 그들은 미래를 제시하지 못하고 매일 자신의 부족함을 반성하지도 않고 공부하기도 게을리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숫자세기로 평가하는 부끄러움을 지속할 리 없다


더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평가할 자신이 없다면 시낭송 평가를 대중에게 넘겨주어야 발전한다


대중은 그래도 낭송을 세지 않고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현명한 방법으로 시낭송을 평가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지루한 시낭송을 누가 들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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