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이어 세대
사백 마흔다섯 번째 글: 당신과의 소통은 필요 없습니다.
"선생님!"
버스를 기다리던 중 근처에 서 있던 다른 학년 선생님을 불렀습니다. 퇴근할 때 같이 버스를 타러 온 건 아니지만, 행선지가 같으니 종종 이렇게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반갑냐고요? 사실 그런 걸 말할 만큼 친밀한 관계는 아닙니다. 다만 가끔 뭔가를 물어봐야 할 때 어딘지 모르게 대화가 되지 않곤 합니다.
벌써 세 번이나 불렀습니다. 여전히 대답이 없다가 한 이삼 초가 지났을 즈음, 그제야 그 선생님의 귀에 뭔가를 꽂은 게 보였습니다. 무슨 노래인지는 몰라도 가까운 거리에 서 있던 탓에 제 귀에도 또렷이 들렸습니다.
'아, 저러니 못 듣는구나.'
그녀는 마치 처음부터 저라는 사람은 그 자리에 없었던 사람처럼 취급하는 듯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가려다 밑져야 본전인 셈 치고 한 번 더 불러보기로 했습니다.
"선생님!"
"네? 뭐라고 하셨어요?"
그녀는 손바닥 안에 쏙 들어갈 만큼 작고 하얀 뭔가를 귀에서 빼내며 저를 쳐다봅니다. 네 번 만에 대답한 그녀는 무슨 말을 했냐며 제게 묻습니다. 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부르기만 했을 뿐입니다. 막상 무슨 말을 제가 했다고 치더라도 이쯤이면 김이 샐 만도 합니다.
아마도 이름이 '인이어'라고 했던 걸로 기억이 납니다. 공식 명칭은 저도 모릅니다. 하다 못해 국어사전에 뭐라고 표기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 빌어 먹을 인이어 때문에 기본적인 소통이 안 될 정도입니다. 그런데 정작 더 답답한 건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 먼저 말을 꺼낸 제게 문제가 있을 뿐입니다. 말만 걸지 않으면 무슨 문제가 있냐는 듯한 눈빛이었다고나 할까요?
요즘 세대는 인이어 세대입니다. 어딜 가나 이것을 착용하지 않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형편입니다. 보기에 좋고 안 좋고 따위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건 사람을 대하는 기본적인 예의에 속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그런 자신의 행동이 예의 없는 일이란 걸 모를까요?
얼마 전엔가 회사에서도 이 인이어를 꽂고 업무를 보는 MZ 세대 사원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어서 왜 못 듣나 싶어서 옆에 가서 툭툭 치면 그제야 인이어를 빼고 알은체를 한다고 하더군요. 그들도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는 있습니다. 귀에 인이어를 꽂고 음악을 들어야만 집중이 잘 된다고 하던가요?
하긴 며칠 전엔 점심식사 시간에 급식실에서 인이어를 귀에 꽂은 채 식사 중인 또 다른 선생님을 본 기억도 납니다. 옆에 자기 반 아이들이 앉아 밥을 먹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들은 왜 그러고 있냐는 지적에도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입니다. 이건 아무래도 아니지 않냐고 하거나 대인관계상 도리가 아닌 것 같다고 말하면, 지적한 사람에게 개꼰대 취급을 하곤 합니다.
세상이 왜 이렇게 되어가는 것일까요? 아무리 자기가 좋아하거나 호감이 있는 사람과만 소통을 하는 걸 선호하는 세대라고 해도 다 큰 성인이 왜 이 간단한 것 하나조차도 판단이 되지 않는 걸까요?
"당신과의 소통은 필요 없습니다. 저는 그걸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그들은 마치 제게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과연 제가 민감하고 까탈스럽게 구는 것일까요? 적어도 학교 사회에서 아이들에게만 휴대폰 사용에 대해 얘기할 게 아니라, 어른들의 인이어 사용 문제도 한 번쯤은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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