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다 보면 이렇게 써도 되고 저렇게 써도 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상황에 따라 한 가지 방식으로만 써야 할 때가 있습니다. 전자라면 별 문제될 것이 없겠으나, 후자의 경우라면 그 미묘한 차이에 유념하여 보다 더 적확한 표현을 사용해야 합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건가 싶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가장 흔히 쓰는 표현을 두고 실례를 들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다음의 두 문장에 주목해 주십시오.
(1-1) 정답은 3번입니다.
(2-1) 그는 나와의 약속을 세 번이나 어겼다.
위의 예에서 잘못된 부분은 없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이렇게 써야 맞는 표현입니다. 그건 글을 쓰건 말을 하건 간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사항입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이 표현하면 어떻게 될까요?
(1-2) 정답은 세 번입니다.
(2-2) 그는 나와의 약속을 3번이나 어겼다.
혹시 어딘지 모르게 이상해 보이지 않습니까? 만약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만큼 우리는 알맞지 않은 표현을 오랫동안 써 왔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3번'으로 쓰느냐, '세 번'으로 쓰느냐의 차이로 보입니다만, 보다 더 미묘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서로 간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이번엔 이렇게 표현해 보겠습니다.
(1-1) 정답은 3번입니다.
(1-2) 정답은 세 번입니다.
(2-1) 그는 나와의 약속을 세 번이나 어겼다.
(2-2) 그는 나와의 약속을 3번이나 어겼다.
(1-1)과 (2-1)은 올바른 표현이지만, (1-2)와 (2-2)는 바르지 못한 표현입니다. 정답이 뭐냐를 말하려고 할 때 그 속에 거론되는 숫자는 번호를 뜻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엔 번호로 써 주는 게 맞습니다. '정답은 3번'이지 '정답은 세 번'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반면에 어떤 일이 반복되는 빈도나 횟수를 나타낼 때에는 번호가 아니라 관형사인 '세'를 쓰는 것이 옳은 표현입니다. '약속을 세 번 어긴 것'이지 '약속을 3번 어긴 것'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비싼 밥 먹고 왜 하나 마나 한 소리를 하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심코 우리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있기에 하는 얘기입니다. 가령 (1-2)처럼 쓰지는 않지만, 흔히 (2-2)처럼 쓰는 경우는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명색이 우리는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올바르고 정확한,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다 더 적확한 표현을 쓸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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