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입지 않는 옷가지들을 마네킹들이 폼나게 입고 유혹한다 슬쩍 소매 사이의 가격표를 훔쳐본다 사무실 월세 보름치다 내가 입어도 될까
옷감을 만져본다 싶으면 어디선가 점원이 나타나 세상 고운 미소로 당신에게 딱 어울린다고 부추긴다 무조건 들어와 둘러보라고 한다 이런 환대가 없다 점원은 간과 쓸개가 여럿 있는 것 같다
그의 눈을 보면 아니 입을 수가 없다 잠겨지지 않는 지퍼를 겨우 잠그며 힘겨워하자 이내 다른 사이즈의 옷들을 기다렸다는 듯이 대령한다 이런 시중이 없다 다리를 들면 옷이라도 입혀줄 태세다
그의 움직임을 보면 다른 매장으로 매정하게 갈 수가 없다 이렇게 정성을 다하는데 이쯤 되면 그에게 실망을 주기 어려워진다 그는 연신 나를 칭찬하고 나이보다 한참 젊게 보인다는 립서비스가 밉지 않다계획에도 없던 옷가지를 하나 더 고른다
점원은 옷의 장점을 늘어놓으며 왜 내가 이것을 입어야 하는가를 구차하지 않게 열거한다 거울을 보며 들으니 쉽게 설득된다 모르는 분야는 장악한 자가 칼자루를 쥔다 이 옷을 디자인한 사람이 날 위해 만들었나 착각이 들게 한다 그리고 다시 가격을 보니 그렇다면 지불할 명분이 단단해지고 장벽이 낮아 보인다 착시도 이런 착시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