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토론을 하다가 나온 주제에 대해 불편해하거나 분노를 표현하는 방식이 많이 다르다.
대체로 민감한 주제들이 있다. 정치, 종교, 성에 대한 시작을 하는 순간 긴장이 역력하다. 나는 민감한 주제라 생각하기보다 그들을 지루한 주제로 인지한다.
결정화된 똑같은 주장, 토씨하나 다르지 않게 반복하는 나태스럽고 성의 없는 토론이 무섭다.
요즘 영화의 트렌드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성 정체성에 다다랐다. 머릿속이 뿌옇게 안개가 차기 시작했다. 각각 다른 사람들의 입에서 똑같은 단어들이 차례차례 줄 서서 나온다.
'자연스러운 것을 거스르며 추한'에서 질문한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대부분 사람들이 가는 길이라며 한껏 올라온 감정으로 다른 의견의 사람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 한다. 나는 주로 질문하며 듣는다.
성 정체성이 정치로 이어진다. 세상 살아가는 다양한 방식들이 예술로 떠오르는 빈도수에 맞춰 정치인들이 자신의 신념과 철학을 꺾고 입발린 소리를 한다며 거품을 흘린다.
그가 그럴 리가 없단다, 여러 고개들이 흔들거리며 동의한다. 그녀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며 표를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한 쇼라고 단언한다. 그게 정치라며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거라며 한바탕 사나운 눈길로 빗자루질을 한다.
세상이 표현되는 방식은 그 사람을 켜켜이 만든 시간과 공간, 사람과 관계가 있다. 나는 지루한 틈 속에 객관적인 화자로서의 상대를 그려본다. 간간이 손을 든다.
내 가족이 그런 건 생각도 못한다며 벌써 인연을 끊은 듯 툭툭 말이 흘러나온다. 그렇게 태어난 사람에게 자신을 인정할 수 없는 비참한 삶을 강요하기보다 현상과 존재를 인정하며 같이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조심스러운 한 사람의 의견은 몇 쌍의 사나운 눈과 입으로 제압당한다. 급기야 종교로 이어지다가 교육의 탓이 된다. 관심 있는 주제에 귀가 다섯 배로 커진다.
부모로서 아이들이 제대로 된 길을 가도록 철저하고 꼼꼼하게 돌보아야 비뚤어지지 않는다며 체온을 올린다.
그와 그녀들의 아이들은 수학 학원에 다니고 과학 학원에 다니고 독서학원에 다니고 영어 유치원에 가고 피아노 학원에 컴퓨터 학원에 놀이 학원이랑 사고력 학원에 다닌단다. 놀이도 학원이 있는 줄 몰랐다.
부족한 과목에 개인 선생님이 붙어 가족과의 소통이 부족해지고, 모자라는 체력에 수영을 배우고 줄넘기 학원에서 마스터 자격증을 위해 수직 수평으로 달리며 길러야 할 자신은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다.
시간도 모자라고 눈 맞춤도 모자라고 따뜻한 허그도 모자라고 같이 마주할 밥상도 찢어져 따로따로다. 그렇게 쌓인 모자람들은 치료와 상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아이들과 마음을 나누며 보내는 시간이 어느 정도 되는지에 대한 답은 제대로 들어보지 못했다. 교육열이 높은 지역에서 뒤떨어지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이 희생도 따른다며 한 목소리로 뜨겁다. 희생이라니.
불통을 결심한 지루한 주제들이 교육으로 이어지면 대체로 셀로판지처럼 바닥에 붙어 있던 나는 조금씩 들썩인다.
끊임없는 불평 불만 말고 희망과 대안을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