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일 차.
느지막이 일어났습니다. 눈을 뜨고 보니 반갑게도 오늘이 토요일이었습니다. 늘 그러했듯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화들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시각을 확인하고는 지각했다는 생각부터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휴대폰 상단을 엄지손가락으로 밀어내렸습니다. 요일을 확인해야 하니까요. 토요일이라는 글자를 보고는 마음을 놓았습니다. 제겐 두 가지 선택지가 놓여 있습니다. 잠을 더 자거나 혹은 일어나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더 자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나 만약 눈을 다시 감았다가 뜨면 꽤 늦은 시각에 일어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싶었습니다. 이 피 같은 휴일을 고스란히 날려 먹을 수는 없습니다. 'breakfast', 밤부터 아침까지의 긴 금식부터 깨야 했습니다. 아침이라고 하기에는 약간 늦고 그렇다고 점심이라고 하기엔 너무 이릅니다. 이런 걸 두고 '아점'이라고 하던가요? 다음 사전을 찾아보니 아침 겸 점심으로 먹는 밥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설마 이런 낱말까지 국어사전에 등재가 되어 있나 싶었는데, 시대가 많이 변하긴 변한 모양입니다.
아점을 해결하고는 언제나처럼 저는 저만의 루틴대로 움직였습니다. 일단 먹은 그릇들을 씻었습니다. 세제를 묻혀 개수대 바닥을 문지르고 나니 음식물 거름망이 잔뜩 찬 것이 보였습니다. 음식물을 모으는 비닐에 붓고 개수대 주변을 깨끗이 닦고는 집안의 쓰레기를 묶어 냈습니다. 진공청소기로 온 집안의 먼지를 빨아들인 뒤, 봉에 물걸레를 끼워 바닥도 닦습니다. 그 사이 작동이 멈춘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어 탈탈 털어 건조대에 널었습니다. 그럭저럭 할 일은 다 마쳤습니다.
상쾌한 기분으로 노트북을 가방에 챙겨 넣고는 집을 나서려다 화장실에 잠시 들렀습니다. 그때 아무래도 청소를 한 번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3~40분은 있어야 집을 나설 수 있습니다. 락스를 화장실 구석구석에 뿌린 뒤에 때가 빠지길 기다려야 합니다. 길면 30분에서 짧아도 20분은 기다리는 게 좋습니다. 사실은 그렇습니다. 청소를 한다는 것 자체가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긴 해도, 하고 나면 참 잘했다 싶은 생각이 들곤 합니다.
이제 제 바짓가랑이를 붙잡을 건 없어 보입니다. 흐뭇한 마음으로 집을 나섭니다. 밖에 볼 일을 보러 나간 가족들에게 나간다는 보고용 문자 메시지를 날렸습니다. 집 앞 신호등을 건너자마자 조금도 고민 없이 파스쿠찌의 문을 밀고 들어섰습니다. 혼자서 여유를 즐긴답시고 싸돌아다녀 봤자 애꿎은 돈만 쓸 뿐입니다. 물론 파스쿠찌에 공짜로 있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감가상각을 따진다면 밑지는 소비는 아닌 듯합니다.
오늘은 어쩐 일인지 매장 1층이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던 곳입니다. 무려 10명의 사람들이 얘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죄다 저보다 연배가 열 살은 더 많아 보이는 분들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목소리가 다들 높았습니다. 오면 늘 앉는 자리는 마침 비어 있었지만, 미련 없이 포기하고 음료를 들고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의외로 2층이 절간 같습니다. 항상 제가 올 때마다 2층이 시끄럽고 1층이 조용했는데, 오늘은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집니다.
자, 이제 멍석을 깔았으니 춤을 추든 굿을 펼치든 뭐라도 해야 합니다. 아무리 제가 가장 즐겨 마시는 음료라고는 하나 6800원이나 주고 단지 바닐라 라떼를 마시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은 아닙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도 써야 할 글이 적지 않습니다. 얼마나 쓰게 될지는 알 수 없으나 슬슬 발동을 걸어봐야겠습니다.